“직접증거 없지만 니코틴 살인 맞다”… 부인-내연남 무기징역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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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비흡연 남편 숨지게 한 ‘니코틴 원액’ 살해도구 첫 인정

지난해 4월 22일 경기 남양주시의 한 아파트에서 오모 씨(53)가 잠이 든 채 숨졌다. 외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고통에 몸부림친 흔적도 없었다. 부검 결과가 이상했다. 오 씨의 몸에서 니코틴이 너무 많이 나왔다. L당 1.95mg. 혈액 중 니코틴 농도가 L당 3.7mg 이상이면 치사량으로 알려졌다. L당 1.40mg 중독으로 사망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오 씨는 담배를 전혀 피우지 않았다.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곳곳에서 타살 정황이 드러났다. 한국 최초의 ‘니코틴 살인 사건’이었다.

7일 의정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고충정)는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된 오 씨 부인 송모 씨(48·여)와 황모 씨(47)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황 씨는 송 씨의 내연남이다. 니코틴 살인 사건의 범인이 마침내 가려진 순간이다.

재판부는 여러 간접증거를 들어 두 사람을 유죄로 봤다. 우선 오 씨의 몸에서는 니코틴뿐만 아니라 수면제 성분의 졸피뎀이 나왔다.

아내 송 씨는 오 씨와 6년간 동거했다. 그리고 오 씨가 숨지기 두 달 전 혼인신고를 했다. 경찰 조사 결과 송 씨는 남편이 숨지고 한 달도 되기 전에 아파트 등 약 10억 원의 재산을 처분했고 약 8000만 원의 보험금을 청구하기도 했다. 송 씨와 내연관계인 황 씨에게선 휴대전화 인터넷을 통해 ‘살인의 기술’ ‘퓨어 니코틴 치사량’ 등을 검색한 흔적이 발견됐다. 결정적인 건 오 씨가 숨지기 일주일 전 황 씨가 인터넷을 통해 중국에서 니코틴을 구입한 것이다. 순도 99%의 니코틴 원액이었다. 송 씨가 남편 재산을 처분한 뒤 약 1억 원을 황 씨에게 송금한 사실도 확인됐다.

하지만 이게 전부였다. 니코틴을 언제 어떻게 오 씨에게 주입했는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오 씨의 몸에선 주삿바늘이나 피부에 붙이는 패치 등 약물을 외부에서 투입한 어떤 흔적도 나오지 않았다. 니코틴 원액은 기체로 만들기가 어려워 호흡기로 투입하기가 어렵고 잠든 사람의 입을 벌려 마시게 할 경우 입안이 불에 타는 듯한 통증을 일으켜 먹이기도 어려웠다. 경찰과 검찰 모두 이 부분을 밝히지 못했다. 송 씨와 황 씨는 줄곧 범행을 부인했다. 검찰이 무기징역을 구형했을 때 억울함을 호소하며 눈물을 흘렸다.

재판부도 고심의 흔적이 역력했다. 구체적인 살해 시기와 방식을 입증하는 직접증거가 없던 탓이다. 이날 법정에서 재판장은 선고문 낭독에 앞서 서류를 만지며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재판장은 “피고인에게 죄가 있는지 의심될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쪽으로 판단하는 게 형법의 기본 원칙”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방청석에 있던 오 씨의 유족이 한숨을 내쉬었다. 재판장은 “검찰은 범행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나 피고인들의 유전자(DNA) 등 직접적인 살인의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며 “특히 피해자 몸속에 니코틴이 어떻게 주입됐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판결은 무죄로 기우는 듯했다.

하지만 재판장은 “살인의 심증이 직접증거에 근거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며 “각각의 간접증거가 범죄사실을 완전히 입증하진 못하더라도 종합적인 증명력이 인정되면 유죄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전의 순간이었다. 1시간에 걸친 유죄 판단의 이유를 설명한 재판부는 “잔인한 살인을 저지르고도 변명으로 일관하며 후회나 반성을 보이지 않았다”며 “반인륜 범죄로 참작의 여지 없이 사회와 영구 격리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의정부=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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