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엄마…母가 욕심을 내려놔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일 17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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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유치원 추첨 시즌이다. 만 3세 전후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라면 대부분 안다. 어떤 유치원을 보내야 할지, 과연 추첨에서 되기는 할지, 그 고민하고 맘 졸이는 마음을.

과연 초등학교 입학 전 유아들에게 필요한 교육은 무엇이며 어떤 환경이어야 좋은 교육환경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지난달 22일 국내 최고의 유아교육전문가로 손꼽히는 이기숙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명예교수(66)를 만나 물었다.

―어린이집이냐 놀이학교냐, 일유(일반유치원)냐 영유(영어유치원)냐. 영유아를 둔 엄마들 고민이 참 많은 요즘입니다.

"먼저 놀이 '학교', 영어 '유치원' 같은 말은 써서는 안 됩니다. 그런 기관은 학교도 아니고 유치원도 아니죠. 그냥 학원, 교습소일 뿐이에요. 국가 수준의 누리과정을 충실히 구현하는 곳이어야 학교인 것이고, 유치원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명문으로 불리는 '이화유치원' 원장을 8년간 역임하셨습니다. 이화어린이연구원장, 유아교육학회장도 지내셨죠. 그렇다면 과연 어떤 유치원이 좋은 유치원인가요.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입니다. 제일 중요해요. 어느 학교에서 어떤 교육을 받았고, 얼마만큼의 경력을 가진 선생님들인지 원장님께 물어보세요. 엄마들이 자꾸 물어야 원장님들도 비싸도 좋은 교사를 쓰려고 노력합니다.

요즘 엄마들은 유치원 인테리어를 많이 보지요? 그런데 너무 멋진 인테리어를 한 곳보다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환경을 꾸민 곳인지를 보길 바랍니다. 어른들 눈에 멋져보이게 갤러리처럼 꾸민 곳, 한쪽 벽이 온통 백설공주 벽화인 곳 보다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아이들이 그린 작품을 많이 붙여놓은 곳이 좋은 곳입니다.

놀잇감이 영역별로 다양하게 구비돼 있고 모든 놀잇감이 아이들 눈높이에 아이들이 꺼내 쓸 수 있게 잘 정리돼 있는지 보세요. 아무리 비싼 교구라도 저 높이 올려져 있는 건 의미가 없지요. 교구가 너무 없는 곳도 안돼요.

아이들이 뛰어놀 공간이 유치원 안팎에 충분한지, 안전한지도 보세요. 특히 화장실이 깨끗한지 봐야합니다. 화장실이야말로 기본 생활습관을 제일 많이 길러줄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지요."

―최근 '적기교육'이란 책을 통해 40년간의 유아교육 경험을 풀어내셨습니다. 조기교육보다는 적기교육을 받은 아이가 더 밝고 우수하게 자란다고 강조하셨는데요.

"나는 유치원을 선택할 때도 너무 많은 특별활동을 하는 곳은 추천하지 않아요. 어린 시절은 '마음의 근육'을 키우고 행복감을 경험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앞으로의 아이들에게는 단순한 지식보다 대인관계 지능, 신체지능과 같은 다양한 사회적, 창의적 다중지능이 요구돼요. 이건 오직 공동집단 속에서 놀이와 관계맺기를 해야만 배울 수 있는 것이죠. 학원과 학습지로는 안 되는 거예요.

요즘 아이들은 다들 공주님, 왕자님처럼 키워지지요. 그런데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예전 아이들보다 자신감이 없다는 거예요. 그 나이엔 못하는 게 당연한 건데도 잘 하는 아이들과 비교하니 '나는 못한다'가 세뇌가 돼요. 나는 그게 너무 무서워요.

사교육을 많이 한 아이들을 보면 산만해요. 자기가 모르는 걸 자꾸 이것저것 집중하라고 하니까 어떤 일에도 집중할 수가 없지요. 엄마들이 산만함을 키우고 있는 거예요.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불안하면 유아교육과 전공에 '유아행복론'이 학과목으로 들어왔겠어요."

―엄마들은 아이가 잘 됐으면 해서 시키는 것일 텐데요.

"그렇다면 아이에게 '몰입'할 기회를 주어야지요. 유아에게 제일 좋은 교육은 몰입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내가 다 완성했다. 너무 재밌다. 난 할 수 있어'라는 긍정과 자신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입니다.

예컨대 한글을 봅시다. 어떤 엄마들은 '우리 애가 두 살인데 벌써 한글을 읽는다'고 자랑해요. 열 일 제치고 한글만 시키면 두 살도 읽을 순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걸 왜 그 때 배워야 하며 그걸 어디다 쓰나요. 그 때 해야 할 교육은 그게 아니지요.

엄마들은 한글교육을 '가나다라'만 생각하는데 이번 수능을 보면 알겠지만 읽을 줄 안다고 다 되는 게 아닙니다. 얼마나 글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중요한 걸 찾느냐가 중요하지요.

이것의 기초는 어디에서 시작되나하면 영유아기 때 일어납니다. 대화와 이야기를 많이 접해야 해요. 제대로 된 유아교육기관에서 동화를 듣고 선생님과 친구들과 많이 이야기 해야죠. 가정에서 엄마와 유대감을 느끼면서 많은 책을 읽고 대화해야 해요.

연구에서도 나타나요. 두 살 때부터 사교육을 많이 받은 아이들은 오히려 뒤로 갈수록 사회정서발달이나 창의성이 떨어져요. 외톨이인 아이들도 많았죠. 그런데 정말 집단 속에서 놀아보고, 싸워도 보고, 대인관계 지능을 높인 아이들은 전체적인 능력이 아주 좋고 문장이해력이나 독해력, 어휘력도 월등히 좋았어요."

―그런데 어린 자녀를 둔 많은 엄마들은 '아이들이 좋아해서' 사교육을 시킨다고 합니다. 비싸서 안하고 싶어도 애들이 좋아하니까 시킨다고도 하는데요.

"유아기 때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건 누구일까요. 엄마입니다. 엄마가 내가 어떻게 할 때 좋아하고 엄마가 내가 어떤 행동을 해야 사랑해주는지 아이들은 귀신같이 알고 있어요. 잘 관찰해야 합니다. 아이가 정말 좋아서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엄마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인지를 말이죠.

아이들이 크다보면 자기가 너무 좋아하는 게 나옵니다. 그 때가 배움의 적기예요. 아무것도 가르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는 겁니다. 그 땐 그 기회를 놓치면 안돼요."

―엄마의 자세가 중요하겠네요.

"엄마들이 욕심을 내려놔야 해요.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도 엄마입니다. 무조건 아이 옆에 있는다고 좋은 엄마가 아니고 아이와 양보다 질로, 질적인 상호작용을 해주는 엄마가 유익한 엄마예요.

아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춘기가 돼서 문 걸어 잠그고 엄마랑 말 안하는 게 아니에요. 요즘 아이들은 사교육 때문에 엄마를 포함해 친구 등 주변인과 관계 맺기를 하고 대화를 나눌 기회가 너무 적어요. 처음엔 고등학교 아이들만 그랬는데 그게 점점 중학교, 초등학교로 내려오더니 이제는 유아기 아이들마저 인생의 기초를 마련할 기회를 뺏기고 있어요. 너무 개탄스러워요.

먼저 출발한 아이가 반드시 먼저 도착하진 않는다는 말이 있어요. 40년 간 유아교육을 하고 내 아이를 키우며 살아보니 정말 그래요. 늦은 것 같지만 적기에 제대로 출발한 아이가 끝까지 제대로 도착할 수 있어요. 엄마들이 믿음을 갖기 바랍니다."
임우선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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