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커 피해 명소 특별관리” 립 서비스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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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관광조례 개정안 실효성 적어

 
 ‘쉿, 주민이 살고 있어요.’

 벽화마을로 유명한 서울 종로구 이화동 입구에는 이 같은 표지판이 있다. 하지만 이달 3일 찾은 벽화마을 표지판 바로 옆에선 수십 명의 중국인 관광객(유커·遊客)들이 큰 소리를 내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곳은 한류 드라마와 예능 등에서 자주 소개돼 유커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는 관광 명소가 됐다. 하지만 주민들은 죽을 맛이다. 22년간 이화동에서 살고 있는 이상근 씨(54)는 “한밤중에 뜬금없이 관광객이 화장실을 쓰겠다며 문을 두드리는 등 분통 터지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벽화마을뿐 아니다. 중국 최대 명절인 국경절 연휴(1∼9일) 기간 서울 도심 곳곳은 밀려드는 유커들로 몸살을 겪었다. 11일 서울시에 따르면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중 80%가량이 서울을 찾는다. 서울의 대형 백화점과 면세점 등은 유커 특수를 톡톡히 누렸지만 관광지 주변에 사는 주민들과 영세상인들은 공공의식을 상실한 유커들로 인한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시민들의 가장 큰 불만은 유커의 ‘공중도덕 불감증’이다. 3일 경복궁에서 만난 방호 담당 직원은 “궁 안에서 담배 피우는 유커도 있고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구석에 방뇨까지 한다”며 혀를 내둘렀다. 주요 관광지가 밀집한 서울 종로구에서 9월 현재 유커들로 인한 주민들의 생활 민원 접수는 벌써 20건에 달한다. 2014년과 지난해에는 각각 연간 10건과 8건에 그쳤다.

 유커의 방문이 지역의 풀뿌리 경제에는 별 효과가 없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마포구 서교동은 사후면세점 13개가 모여 있다. 매일 수백 명의 유커가 찾는다. 서교동 C면세점 옆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모 씨(45)는 “유커가 면세점을 나오는 것은 담배 피울 때뿐”이라며 “오히려 가게 앞에 주차한 관광버스가 거대한 차벽처럼 가로막고 있어 답답할 지경이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유커로 인한 주민들의 일상생활 피해가 커지자 서울시와 각 자치구는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종로구는 올해부터 ‘정숙 관광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달 ‘관광진흥조례’를 일부 개정해 공포했다. 이 조례에는 관광지가 있는 주택가 거주민들이 피해를 볼 경우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할 수 있는 방안 등이 담겨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지원 규모와 요건은 담겨 있지 않다. 서울시 관계자는 “아직 주민을 위한 구체적인 지원 대책까진 마련하지 못했다”며 “주민과 관광객이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차 문제도 아직 마땅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은 상태다. 서울의 주요 관광지를 오가는 관광버스는 지난해 기준 하루 평균 1000여 대. 서울시는 올 3월 서울역 부근에 관광버스 전용주차장을 마련했지만 아직도 서울 도심의 대형 버스 주차장은 30개, 582면에 그치고 있다. 경찰과 불법 주정차 합동 단속도 벌이지만 서울 도심의 극심한 교통 혼잡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유원모 onemore@donga.com·최지연 기자
#유커#주민#관광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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