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 동창을 20여년간 ‘앵벌이 노예’ 시켜 8억 뜯어낸 40대女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5일 11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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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동창생을 20년 가까이 속여서 거액을 뜯어 낸 40대 여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심성이 착하고 여린 친구를 온갖 거짓말로 속인 이 여성은 호화로운 생활을 했지만 피해 여성은 사실상 ‘노예’처럼 비참하게 살아왔다.

김모 씨(44·여)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교 진학을 못했다. 부모가 이혼하자 17세 어린 나이에 고향인 충남을 떠나 혈혈단신으로 부산에 왔다. 그는 신발공장에 다니며 주경야독을 했다. 특유의 성실함으로 고교를 졸업한 뒤 전문대에 진학했고 부산의 한 중소기업에 식당 영양사로 취업했다. 월급도 차곡차곡 모았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던 그의 삶은 ‘잘못된 만남’ 탓에 서서히 무너졌다. 김 씨는 1994년 7월 또 다른 동창생을 통해 고교 동창생 권모 씨(44·여)씨를 만났다. 비록 학창시절엔 모르는 사이였지만 객지 생활로 힘들어하던 김 씨에게 권 씨는 쉽게 마음을 열 수 있는 상대였다.

권 씨는 심성이 여린 김씨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친구의 교통사고 합의금과 사채업자에게 줘야 할 급전 등이 필요하다”며 각각 300만 원과 400만 원을 김 씨에게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1998년 외환위기로 다니던 김 씨의 회사가 문을 닫은 와중에도 권 씨는 “다른 고교 친구가 교통사망 사고를 내서 합의금이 필요하다”는 등의 거짓말로 꾀었다. 이 같은 수법으로 3년 간 권 씨가 뜯어낸 돈은 1800만 원에 달했다.

김 씨는 1998년 말 어머니로부터 “일본에서 같이 살자”는 연락을 받고 건너갔다. 김 씨는 일본에서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지냈다. 하지만 권 씨와의 질긴 악연은 끝나지 않았다. 권 씨는 김 씨의 사주가 좋지 않다면서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주변 사람이 죽는다’며 제사 비용으로 수천만 원을 받아냈다. 김 씨는 이 같은 수법에 속아 일본에서 힘들게 번 돈을 권 씨에게 송금했다.

2009년 김 씨는 영주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 때부터 권 씨는 김 씨를 더 집요하게 농락했다. “신체 중요 부위에 귀신이 있다. 남자와 성관계를 해야 살 수 있다”고 속였다. 친구를 믿었던 김 씨는 또 속고 말았다. 권 씨는 2010년 3월부터 올 6월까지 김씨에게 성매매를 시켜 벌어들인 수억 원의 수익금을 챙겼다.

이어 김 씨에게 “너의 성관계 동영상이 시중에 유포됐다. 이를 해결하려고 사채 6000만 원을 빌려 썼다”며 6년간 5억여 원을 김 씨로부터 빼앗았다. 또 권 씨는 굿이나 제사에 필요하다며 김 씨에게 치킨, 김밥, 해물탕 등을 배달하게 하기도 했다.

권 씨의 사기 행각은 김 씨에게 더 많은 돈을 가로채기 위해 사채 때문에 교도소에 수감됐다고 거짓말하면서 들통이 났다. 김 씨가 실제 교도소에 가서 확인한 결과 권 씨가 수감돼 있지 않았고 그제야 자신이 꾐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고 경찰에 신고했다.

20년 가까이 권 씨가 김 씨에게서 받은 돈은 경찰이 계좌 등으로 확인한 액수만 8억 원 정도로, 김 씨가 주장하는 피해 금액은 12억~13억 원에 이른다. 권 씨는 이 돈으로 해외여행을 다니거나 부산 강서구에 전세 아파트를 구해 생활했다. 권 씨는 백화점에서 흥청망청 돈을 써 VIP 고객이 됐고, 검거 당시 금고 속에는 현금 7000만원이 있을 정도로 호화생활을 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김 씨는 유흥주점에서 일하고 손님과 성관계하며 번 돈을 매일 권 씨에게 송금했고, 찜질방·고시텔을 전전하며 마치 ‘앵벌이 노예’ 같은 비참한 생활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5일 권 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권 씨는 1998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김 씨로부터 모두 2389차례에 걸쳐 8억여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부산=강성명기자 sm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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