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정신]마지막 주 토요일은 3대가 함께… 조부모-부모-손주 모여 소통

  • 동아일보

올해 5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부양환경 변화에 따른 가족 부양 특성과 정책과제’ 보고서는 가족의 정(情)이 약해지고 위태로워지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

1998년 조사에서는 가족(자녀)이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대답이 90%였지만 2014년에는 32%로 크게 낮아졌다. 사회가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대답은 같은 기간 2%에서 52%로 크게 높아졌다. 떨어져 사는 부모에게 일주일에 한두 번 전화를 하는 자녀는 47%, 한 달에 한두 번은 19%가량으로 부모와 자녀의 친밀도도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달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노인학대 현황은 고령화 사회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지난해 노인학대 신고건수는 1만9000여 건으로 2005년 3500건, 2011년 8600건에 비해 해마다 크게 늘어나고 있다. 노인학대가 발생하는 장소는 85%가 가정이었다.

가족의 유대가 느슨해지고 갈등이 많아지면서 불효(不孝)방지법을 만들어야 한다거나 불효죄를 빨리 입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부모와 자식을 연결하는 윤리적 끈인 ‘효’를 법으로 강제하는 게 적절한가라는 논란도 생긴다.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는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필요한 측면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핵가족화와 고령화 등으로 가족공동체가 흔들리는 모습이다.

경북도가 추진하고 있는 ‘할매할배의 날’은 가족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한 근본적인 노력이다. 어버이날이나 노인의 날과 달리 조부모를 중심에 두고 3대가 소통하는 새로운 차원의 가족 살리기 운동이다.
지난해 12월 경북 구미문예회관에서 열린 랑랑(손주랑 할매할배랑)콘서트 결선대회에서 입상가족이 남유진 구미시장과 함께 무대에 모였다.
지난해 12월 경북 구미문예회관에서 열린 랑랑(손주랑 할매할배랑)콘서트 결선대회에서 입상가족이 남유진 구미시장과 함께 무대에 모였다.

경북도는 2014년 10월 25일 할매할배의 날 선포식을 열었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을 조부모와 부모, 손주가 함께 하는 날로 정해 가족공동체의 가치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부모의 날(어버이날)이나 노인의 날과 구별해 ‘조부모(할머니 할아버지)의 날’을 따로 지정해 기념하는 나라는 미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영국 싱가포르 등 14개국이다.

할매할배의 날은 경북정체성을 통한 경북정신의 실천에 닿아있다. 성급하게 만든 정책이 아니다. 전통 속에서 뿌리를 확인하고 이를 현실에 어떻게 접목할 것인지에 대한 온고지신의 깊은 고민이 담겨 있다. 바로 ‘양아록’(養兒錄·아이를 키운 기록)의 전통이다.

양아록은 조선 중기 유학자 묵재 이문건(1494∼1567)이 남긴 기록이다. 묵재는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 등과 교유한 지식인이다. 사화에 연루돼 고향인 경북 성주에서 귀양살이를 하면서 손자를 얻었다. 양아록은 손자의 출생부터 16년 동안의 성장과 교육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부모를 대신해 삶의 경험이 많은 조부모가 손주를 교육하는 격대(隔代) 교육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할매할배의 날은 공감대를 넓히고 있다. 3대가 어울리는 화목한 가정을 발굴하는 한편 랑랑(손주랑 할매할배랑)콘서트, 아동 인형극, 손주맞이 조부모 교육 시범마을, 밥상머리 교육, 세대공감 편지쓰기 등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시군은 할매할배의 날에 행사와 함께 목욕료 이용료 미용료를 대폭 할인하는 등 특색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경북 울릉군은 이날 가족당 6명까지 여객선 비용을 50% 할인하고 독도전망대 등 주요 관광지 입장료를 면제해준다.

경북도와 한국국학진흥원은 할매할배의 날을 위한 이론서인 ‘노인이 스승이다-왜 지금 격대교육인가’(315쪽)를 펴냈다. 필자로 참여한 김미영 한국국학진흥원 연구부장은 “할매할배의 날을 통한 조손(祖孫) 관계의 소통은 핵가족화로 붕괴된 가족공동체 회복에 긍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경북 영천에서 열린 할매할배의 날 1주년 행사에서 화목한 가족상을 받은 박세희 주부(41·경북 김천시)는 “명절이나 집안에 일이 있을 때면 모이던 가족이 할매할배의 날 덕분에 가족의 정이 깊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할매할배의 날은 올해 교육부의 인성교육종합계획에 반영됐다. 지난해 제정된 인성교육진흥법의 사회적 실천에 효과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를 계기로 경북도는 할매할배의 날이 국가기념일이 될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에 건의했다. 대한노인회도 할매할배의 날 확산에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

경북도가 올해 1월 15개 광역시도의 청소년과 성인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가족공동체를 위한 생활실천운동으로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는 대답이 61%로 나왔다. 국가기념일 지정에 대해서는 51%가 찬성했다. 할매할배라는 말에 대해서도 93%가 정감 있고 편안하며 친근하다고 느꼈다.

김화기 경북도 노인효복지과장은 “할매할배의 날의 가치와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대되는 만큼 국가기념일로 지정돼 가족공동체를 위한 소중한 기반이 되도록 정부가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경북정신#경북#할매할배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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