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병원 필리핀 아이 투병기…“편안히 자는 모습에 행복”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3일 12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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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모병원 소아병동에서 만난 엄마 앤절리카 앤리오 씨(27)가 퇴원을 앞둔 딸 시아(2)를 안고 있다. 엄마는 “이전에는 몸이 아파 누워만 있었는데 이제는 옆에서 잡아주면 서 있기도 한다”며 웃었다. 서울성모병원 제공
서울성모병원 소아병동에서 만난 엄마 앤절리카 앤리오 씨(27)가 퇴원을 앞둔 딸 시아(2)를 안고 있다. 엄마는 “이전에는 몸이 아파 누워만 있었는데 이제는 옆에서 잡아주면 서 있기도 한다”며 웃었다. 서울성모병원 제공
병상에 누워 잠든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예전에는 숨이 차서 깊게 잠을 못 자고 금방 칭얼댔거든요. 아이가 편안히 자는 모습을 볼 때가 제일 행복합니다.”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소아병동 2인실. 필리핀 국적의 시아 밴수엘라 양(2)은 한눈에 봐도 또래보다 몸집이 작았다. 2014년 4월 시아는 선천성 심장병과 항문폐쇄증을 갖고 태어났다. 수술로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병이었지만 문제는 수술비였다. 시아 부모가 사는 타클로반은 필리핀의 대표적인 빈민 지역이다. 이곳 고물상에서 일하며 월 25만 원으로 겨우 생계를 꾸려나가던 시아 부모에게 수술비는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할 큰돈이었다.

시아가 아직 엄마 배 속에 있던 2013년 11월 태풍 ‘하이옌’이 필리핀에 상륙하면서 유일한 보금자리마저 잃고 말았다. 순간 최대 풍속이 역대 최고(시속 379km)였던 태풍 하이옌은 6300여 명의 목숨과 400만 명의 터전을 빼앗았다. 이후 임시 텐트에서 생활하던 중 시아가 태어났다.

목숨을 걸고 지켜낸 생명이었지만 시아의 탄생은 또 다른 시련을 안겨줬다. 2년 동안 아이는 숨이 찰 때마다 배변을 제대로 하지 못해 수시로 울음을 터뜨렸고 엄마인 앤절리카 앤리오 씨(27)는 그런 아이를 달래다 지쳐 같이 울었다. 앤리오 씨는 “아이가 변을 보지 못해 울고 있는데도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시아 가족에게 한 줄기 빛이 비춰진 것은 올해 초였다. 현지 봉사활동을 하던 ‘꽃동네’ 소속 박종윤 필립보 신부가 이들의 사연을 접하고 서울성모병원에 도움을 요청했다. 병원 측은 시아를 무료로 치료해주기로 했다.

올 4월 의료진이 처음 본 시아는 산소포화도가 정상 수치(95%)보다 낮아 입술과 손발이 보라색이었다. 막힌 항문 대신 회음부로 변이 흘러나와 항문 주위 피부는 모두 헐어 있었다. 이철 흉부외과 교수, 이명덕 소아외과 교수, 이재영 소아청소년과 교수로 구성된 의료진은 1개월 간격을 두고 심장 수술과 항문성형 수술을 진행했다. 몸이 약해 회복 속도는 더뎠지만 수술이 잘된 덕분에 나날이 상태는 호전됐다. 이날 본 시아의 손발이 모두 건강한 살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앤리오 씨는 “더이상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면서 “필리핀에 가면 건강한 시아를 데리고 제일 먼저 필립보 신부님을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다음 날인 8일 오전 시아와 엄마는 ‘집’으로 돌아갔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김광연 아주대 의학전문대학원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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