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처럼 대해 달라” 라던 보험설계사, 독거노인 재산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7일 17시 25분


코멘트
“어머니, 식사 잘 챙겨 드셔야 해요. 보일러는 꼭 틀고 주무시고요.”

보험설계사 구모 씨(43)가 할머니 황모 씨(86)를 처음 만난 건 5년 전이었다. 26년 전 남편과 사별한 황 할머니는 그 해 애지중지 키워온 늦둥이 딸마저 영국으로 유학 보내 혼자가 됐다. 그런 할머니에게 구 씨는 ‘자식처럼 대해 달라’며 살갑게 굴었다. 황 할머니 딸의 보험 해약 건을 상담해주다 할머니에게 3억 가까이 되는 재산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였다.

A 보험사 팀장이었던 구 씨는 매달 700만 원이 넘는 월급을 받는 고액 연봉자였다. 하지만 주식에 투자했다 돈을 허공으로 날려보냈다. 구 씨는 황 할머니 돈으로 주식 투자금을 확보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선물을 챙겨들고 할머니를 방문해선 거짓말을 늘어놨다. 그는 “숙부가 광고에도 나오는 제2금융권 대부업체 중역이라 투자금의 수익금 10%를 줄 수 있다”며 “이왕이면 보관하고 있던 돈을 다 내게 맡겨 달라”고 했다. 아들처럼 믿음직스런 구 씨의 말이었기에 황 할머니는 의심할 틈이 없었다. 남편 사망 보험금, 자녀 결혼 자금 등으로 꼬박꼬박 챙겨둔 돈을 구 씨에게 조금씩 넘겨주기 시작했다.

구 씨는 황 할머니가 지급한 투자금의 1%를 이자로 매달 지급하며 할머니의 눈을 속였다. 그는 “투자금을 더 주면 수익금을 많이 돌려줄 수 있다”며 계속 돈을 요구했다. 그렇게 할머니의 전 재산 2억 9700만 원을 2년에 걸쳐 편취했다. 할머니로부터 얻은 돈을 구 씨는 또 다시 주식 투자에 탕진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모두 손실만 입었다. 투자금이 모두 떨어진 걸 확인한 구 씨는 황 할머니와 연락을 두절한 채 도주해버렸다.

구 씨를 반년 동안 기다리던 황 할머니는 결국 경찰에 구 씨를 고소했다. 2년간을 잠적했던 구 씨는 지난달 27일 경찰에 걸렸다. 서울송파경찰서는 구 씨를 사기죄로 구속했다고 7일 밝혔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려 할머니에게 연락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구 씨의 변명은 더 이상 할머니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최지연 기자 lim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