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로 얼룩진 원영이… 메스 대기가 미안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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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면수심 부모가 남긴 상흔 찾아… 법의관들이 말하는 아동학대 실태

5일 서울 양천구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서울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센터에서 만난 양경무(오른쪽), 김민정 법의관이 실제 학대로 사망한 
아동의 부검용 컴퓨터단층촬영(CT) 화면을 모니터에 띄워 두고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설명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5일 서울 양천구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서울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센터에서 만난 양경무(오른쪽), 김민정 법의관이 실제 학대로 사망한 아동의 부검용 컴퓨터단층촬영(CT) 화면을 모니터에 띄워 두고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설명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아이는 이곳에 오지 말아야 했다.

3월 12일 사망한 지 한 달이 지난 신원영 군(7)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서울과학수사연구소의 차가운 부검대 위에 눕혀졌다. 키(112.5cm)가 작아 2m 길이의 부검대 절반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한겨울 벌거벗은 몸으로 찬물 학대를 받고 숨진 아이 주변에는 부검용 메스가 놓여 있었다. 밝은 조명이 앙상한 몸을 비췄다. 두 팔로 놀이기구에 매달려 환하게 웃던 신 군의 밝은 표정은 찾기 힘들었다. 시신이 부패한 탓에 얼굴과 몸은 군데군데 검게 변하고 피부가 벗겨져 있었다.

부검을 맡은 김민정 법의관(37)은 신 군의 몸 구석구석을 살피고 메스를 들었다.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메스로 절개해야 했지만 쉽사리 그러지 못했다. 그는 “학대 상처로 얼룩진 몸을 보고 있자니 칼을 대기가 정말 미안했다”고 했다.

아이들은 학대 사실을 입도 뻥긋 못한 채 사망했다. 나이가 어렸고 부모가 무서웠다. 1월 16일 신 군보다 형인 부천 초등생 최모 군(사망 당시 7세)과 2월 3일 누나인 부천 여중생 이모 양(사망 당시 13세)이 먼저 부검대에 눕혀졌다. 법의관은 억울하게 죽은 아이를 대신해 부모의 학대 흔적을 찾았다. 부모의 죄를 물을 결정적 증거였다. 5일 서울 양천구 서울과학수사연구소에서 김 법의관과 양경무 법의관(48)을 만나 부검 감정서에 담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김 법의관은 신 군 또래의 아들을 키우는 엄마다. 그는 “아들을 생각하면 원영이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무서웠을지 짐작이 간다. 어른으로서 정말 미안했다”고 말했다. 신 군의 몸에서는 피하지방 조직층을 찾기 힘들었다. 먹을 것에 욕심낼 나이에 오래 굶주린 탓이다. 부검용 컴퓨터단층촬영(CT)에선 가슴과 팔 부위에서 각기 다른 시기에 외부 충격으로 인한 골절 흔적까지 남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몸 밖으로 꺼낸 장기를 몸속 원래 자리에 넣고 시신을 봉합한다. 김 법의관은 신 군이 좋은 곳으로 가기를 바라며 시신을 깨끗이 닦아주었다. 사연 많은 주검을 매일 대하는 ‘프로’ 법의관에게도 학대 피해 아동을 부검하는 일은 힘들다. 그는 “학대 흔적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이것만으로 다른 학대가 발생하는 일을 막기 어렵다. 우리 사회가 아동학대에 관심을 가져 더이상 부검실에서 아이들을 만나지 않았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인면수심(人面獸心) 부모를 벌할 증거를 찾는 일은 법의관의 몫이다. 양 법의관은 최 군을 부검했다. 최 군의 부모는 아들을 마구 때려 숨지게 한 것도 모자라 시신까지 훼손했다. 최 군은 얼굴과 목 일부만 남았다. 아동학대 흔적은 머리나 배에서 흔히 나타나는데 머리엔 없었고 배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최 군의 억울함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흔적을 찾는 데 주력했다. 그렇게 얼굴과 목에서 작은 멍 자국 10개를 찾았다. 그는 “사라진 나머지 몸에 더 많은 학대 흔적이 분명 남았을 것”이라며 “부검할 땐 중립을 지켰지만 피의자 신문조서를 읽으면서 가슴이 짠하고 화가 났다”고 했다.

어린이 사망은 희소 질병이거나 사인 불명인 경우가 많다. 부모가 악어의 눈물을 흘리며 사고사로 위장하기도 한다. 이날 만난 법의관들은 어린이 사망을 전문적으로 다루기 위해 대한법의학회에서 ‘소아사망 워킹그룹’으로 활동하고 있다. 양 법의관은 “오랜 기간 시신을 부검하면서 사람은 살아 있는 것만으로 아름답더라”라며 “순수함으로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아이들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그만큼 그들의 죽음이 안타깝다”고 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원영이#아동학대#법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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