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래 많은 곳에 벤치 두고 주민들 위한 공간 만들면 아파트 커뮤니티 살아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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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부르는 공간의 사회학]김영욱 세종대 건축학과 교수

김영욱 세종대 건축학과 교수
김영욱 세종대 건축학과 교수
195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대규모 임대아파트 단지 ‘프루이트-이고(Pruitt-Igoe)’가 세워졌다. 당시로서는 깜짝 놀랄 만한 디자인이었다. 연방정부 주도로 세워진 이 11층짜리 일자형 건물은 총 43개 동으로 2700가구가 살 수 있는 크기였다. 그러나 몇 년 뒤 이 아파트 단지는 애물단지가 됐다. 이웃 간 소통이 끊기면서 각자의 편의만 생각하는 이기주의가 판쳤다. 살기 안 좋은 아파트로 낙인찍히면서 43개 동 중 27개 동이 텅텅 비었다. 결국 주 정부는 ‘정책 실패’를 선언하고 1972년 4월 22일 단지를 모두 폭파했다.

김영욱 세종대 건축학과 교수(53·사진)는 “(프루이트-이고 사례는) 주변과 격리된 단지 구성과 공용장소가 전혀 없는 건축이 이웃 관계를 단절시켜 나타난 문제”라며 “실패한 이 같은 건축 방식이 한국에는 급격한 경제 성장기에 들어와 대세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빨리 짓고 많이 수용하기 위해 격자 형태의 성냥갑식 임대아파트를 만들다 보니 이웃과의 소통을 단절시켰다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서울 강남에 짓는 초고층 아파트 건축에도 새로운 철학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950년대 프랑스 파리에서도 초고층 수직 건물에 관심이 높았다. 르코르뷔지에가 주창한 ‘빛나는 도시(radiant city)’ 계획이었다. 그러나 유럽의 건축학계는 갑론을박 끝에 그의 건축 디자인에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파리는 다른 길을 택했다. 건물 높이를 낮게 해 밀도를 높이고 단지 중앙에 중정(中庭)을 두어 주민들에게 머물 곳을 마련해 줬다. 김 교수는 “한국은 땅이 좁다는 이유로 고층으로 짓지만 대신 건물 간의 거리가 멀어져 고립도가 높아진다. 높게 지었지만 같은 면적의 저층으로 지은 유럽식 아파트와 거주 가구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는 “단지 구성을 저층으로 고밀도화하게 되면 마을길이 많아지고 이웃끼리 부대낄 확률이 높아진다. 또 외부와 연결된 길들도 많아져 주변 지역과의 교류도도 높아진다”고 조언했다.

이미 지어진 아파트라 해도 소통의 공간을 만드는 방법은 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장소에 편안한 벤치를 몇 개 두거나 쓰지 않는 창고를 젊은 엄마들을 위한 공동 키즈카페로 만드는 것은 커뮤니티를 살리는 좋은 방법이다. 김 교수는 “도시 정책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디자인하는 것”이라며 “그 디자인에 따라 서로 의지하는 공동체를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갈등을 조장하는 동네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고독#아파트#달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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