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탈북자 오죽하면… 아파트 불법 재임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브로커 빚 독촉에… 3, 4명 한집 모여 살며 남은 임대주택은 월세로

4년 전 북한 자강도에 가족을 남겨두고 탈북한 김모 씨(27·여)는 2013년 초 하나원을 나설 때만 해도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한국에서 적응하기 위해 4개월 동안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은 뒤 공공임대아파트와 정착지원금을 받았다. 공부를 잘했으면서도 북한에서 출신성분 때문에 가지 못했던 대학도 들어갈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김 씨에게 닥친 ‘남한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생활비를 감당하며 북한을 탈출할 때 조선족 브로커에게 진 빚 1000만 원을 갚아야 하는 게 고역이었다. 중국에서 캄보디아, 미얀마를 경유해 한국에 들어온 그는 한숨 돌리기도 전에 “1000만 원을 갚으라”는 독촉에 시달렸다. 이자가 연 20∼30%이다 보니 기본 생활비만 빼고 갚아도 4년이 넘게 걸린다. 김 씨는 하나원을 나올 때 받은 400만 원, 2014년 다시 받은 300만 원 등 총 700만 원의 정착지원금과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번 돈 등으로 빚을 갚았지만 아직도 다 갚지 못했다.

공부를 병행하며 힘겹게 2년을 보내고 대학 진학을 눈앞에 둔 2015년 초 김 씨는 아파트 불법전대에 눈을 돌렸다. 정부 장학금을 받지만 교재비 등으로 증가한 생활비를 감당하기 힘들어 탈북 친구들 3명에게 함께 살자고 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탈북자 각 1명에게 공공임대아파트 1채씩을 배정하고 있다. 김 씨는 “임대아파트가 10∼20평 정도로 넓은 편이니 함께 모여 살고 남는 집 3채는 세를 주자”고 제안했다. 보증금 없이 방 두 개짜리 아파트는 월 50만 원, 방 한 개짜리 아파트는 월 20만∼30만 원을 받았다. 아파트 3채를 전대하며 벌어들이는 수입은 한 달에 150만 원. 네 명은 이 돈을 나눠 생활비에 보탰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공공임대아파트 입주자가 다른 사람에게 재임대를 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당국의 불시 방문조사로 적발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김 씨사례 외에도 탈북민 불법전대는 서울 양천구와 강서구, 노원구, 경기 안산시 등 임대아파트 밀집지역에서도 행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탈북자 지원체계의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탈북자 대부분이 직장 없이 방황하다 보니 불법전대에 쉽게 빠진다”며 “법으로만 단속하면 그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등 역효과도 있다. 탈북자들이 남한에 쉽게 정착할 수 있게 돕는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천한 출신성분 때문에 대학을 못 갔던 한도 풀고 혼자라 외로워서 그랬던 건데…. 저는 이제 남한에서 범죄자로 살아야 하나요.” 김 씨는 요즘 불법전대가 걸릴까 전전긍긍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탈북자#아파트#재임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