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야, 폭언 상사 대응법 알려줘”…증거파일 모으는 MZ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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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의 무리한 요구와 폭언을 챗GPT한테 물어보니 ‘직내괴(직장 내 괴롭힘) 신고감’이라고 녹음하래요. 그날부터 증거를 모으기 시작했죠.”

제약사 3년 차 사원인 김모 씨(28)는 “챗GPT 안내에 따라 최근 통화 녹음이 되는 애플리케이션(앱)도 설치했다”며 지난달 29일 이렇게 말했다. 김 씨는 수개월간 팀장으로부터 “성과가 이것뿐이냐”는 공개 질책을 받았고, 납품 실적을 위해 고객사와의 저녁 식사 자리에 참석하라는 강요도 받았다. 실제로 앱을 깔고 팀장의 부적절한 언행을 모두 녹음한 김 씨는 “지금까지 모은 파일만 10개가 넘는다”며 “조만간 팀장을 신고한 뒤 퇴사할 것”이라고 했다.

● MZ세대, “‘직내괴’에 참지 말자”

첫 노동절을 맞은 1일 청년층과 직장인들에 따르면 직장 문화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참는 게 미덕’이라며 견디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문제를 기록하고 신고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근로자가 늘고 있는 것. 특히 스마트폰과 각종 앱, 인공지능(AI)에 익숙한 MZ(밀레니얼+Z)세대에게 ‘직내괴’는 누구나 알아듣는 일종의 고유명사로 자리 잡았다. 침묵하던 과거와 달리 “‘직내괴’에 참지 말자”는 흐름이 상식이 된 셈이다.

9년 차 사회복지사로 한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복지관에서 일하는 윤모 씨(34)도 스마트폰의 도움으로 직장 내 괴롭힘에 대응했다. 그는 지난해 8월부터 상사로부터 “기관에 후원금을 내라”라는 강요를 받는 등 부당한 지시를 여러 차례 받았다. 상사는 윤 씨의 외모를 두고 “얼굴에 주사 맞았냐”고 조롱하기도 했다. 윤 씨는 “관련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차곡차곡 모아 기관에 신고했더니 기관이 먼저 나서 상사와 나 사이를 중재해 줬다”며 “현재는 괴롭힘이 사라져 만족한다”고 말했다.

생성형 AI도 새로운 조력자로 떠오르고 있다. 챗GPT 기반 서비스인 ‘직장 내 괴롭힘 지킴이’가 대표적이다. 해당 사이트에 들어가 폭언 등 구체적인 괴롭힘 상황을 입력하면 이를 분석해 “메모·녹음·화면 캡처 등 증거를 확보하라”는 식으로 조언해 준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직내괴’에 대한 대응이 하나의 성공 서사처럼 공유되고 있다.최근 한 누리꾼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난 MZ니까 재직 중임에도 철판 깔고 신고했다”고 올린 글에는 “녹음기를 켜라”, “참고가 되어 고맙다”는 조언과 응원의 댓글이 이어졌다.

● 인권 감수성 높고 이직 두렵지 않아

이런 MZ세대의 태도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해마다 늘어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접수 사건은 1만6373건으로 5년 전보다 약 2.8배로 증가했다. 2020년 5823건이던 ‘직내괴’ 신고는 매년 증가해 2023년 1만 건을 넘어섰다. 강영수 숨앤트임 노무사는 “지금의 MZ세대는 학창 시절부터 인권·갑질·차별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접하며 성장한 세대여서 권리 침해에 민감하다”며 “스마트폰 녹음, 메신저 저장, AI 상담 등 기술 발전도 적극 대응을 가능하게 했다”고 말했다.

또 이직에 대해 낮아진 심리적 방벽도 영향을 미쳤다.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평생 직장에 대한 관념이 약화됐고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인식 자체가 보편화된 만큼 더욱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할 수 있게 된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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