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살벌하고 집요하게… 불륜男의 데이트 폭력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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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안 받는 게 사람을 죽일 만큼 분노할 만한 일이었을까.

장모 씨(38)는 5일 내연녀 임모 씨(35) 집을 찾았다. 평소처럼 전화를 걸었는데 임 씨가 받지 않자 화를 참지 못하고 단숨에 달려간 것이다. 그는 창문으로 몰래 집에 들어가 잠을 자고 있던 임 씨와 임 씨의 남편을 흉기로 찔렀다. 임 씨 남편은 등을 크게 다쳐 숨졌고 임 씨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장 씨는 “전화를 받지 않고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보자 순간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장 씨는 10년 전 온라인 게임을 하다 임 씨를 알게 됐다. 임 씨가 결혼하면서 연락이 끊겼다가 지난해부터 다시 만나 내연 관계가 시작됐다. 서울 노원경찰서는 6일 장 씨에 대한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

지난달부터 경찰이 ‘데이트 폭력’을 근절하겠다고 나선 가운데 또다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데이트 폭력은 이처럼 연락을 잘 받지 않거나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한 것에 화를 참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최근 서울중앙지법 민사98단독 정우석 판사는 여자친구를 마구 때려 전치 5주의 부상을 입힌 남성에게 치료비와 위자료 등 248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남성의 무차별 폭행도 여자친구의 이별 통보가 도화선이 됐다.

문제는 피해자 상당수가 심각한 위협을 느낄 정도의 폭력이 발생하기 전에는 피해 사실을 드러내길 꺼린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특성은 불륜 관계에서 더 두드러진다고 입을 모은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불륜 사실을 알리겠다”는 협박에 상당수 피해자가 신고를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며 “이런 관계에서는 피해자가 성적 욕망을 채우는 대상으로 전락하거나 지속적인 폭력에 시달리는 일종의 ‘노예 관계’가 될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내연 관계에서의 데이트 폭력은 더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지난해 6월 경남 진주에 사는 50대 남성은 다른 남성과 바람을 피웠다는 이유로 내연녀를 무차별 폭행해 숨지게 했다. 지난해 8월 부산에선 40대 남성이 이별을 통보한 네 살 연상의 내연녀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미혼 남녀에 비해 현실적 제약이 많은 불륜 사이에서는 만남을 원하는 쪽에서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분노가 커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 역시 “불륜 사이에서의 데이트 폭력은 폭행이 지속적이고 잔인해지는 경향이 있다”며 “통계상으로는 잡히지 않지만 협박이나 보복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한 불륜 데이트 폭력이 훨씬 더 많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청은 지난달 3일부터 이달 2일까지 데이트 폭력 집중신고기간 동안 가해자 868명을 입건하고 이 중 61명을 구속했다고 6일 밝혔다. 이 기간에 발생한 데이트 폭력 1279건 중 61.9%가 폭행 및 상해였다. 체포 감금 협박은 17.4%, 성폭력은 5.4%로 나왔다. 살인과 살인 미수는 각 1건씩 발생했다.

김호경 whalefisher@donga.com·김재희 기자
#데이트 폭력#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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