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일반인이 만든 사이트 베낀 공공기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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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사기피해 공유’ 유사 서비스
학교정보 ‘아이엠스쿨’ 인기 끌자, 서울교육청서 비슷한 앱… 표절논란

더치트(위)와 경찰청 사이버캅 위젯. 네이버 중고나라 캡처
더치트(위)와 경찰청 사이버캅 위젯. 네이버 중고나라 캡처
김화랑 씨(34)는 세 차례의 중고 거래 사기를 당한 뒤 2006년 1월 사기 피해 사례를 공유하는 웹사이트 ‘더치트’(thecheat.co.kr)를 만들었다. 피해자들이 사기에 쓰인 전화번호와 계좌번호 등을 공유해 손쉽게 사기 위험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사업 초기 더치트가 알려지기 시작하자 경찰에서 도움을 요청했다. 2007년 2월 경찰청이 공문을 보내 와 약 1년간 축적된 사기 용의자 자료 일체를 제공했다. 이후에도 경찰의 수사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필요로 하는 정보를 수시로 경찰에 제공했다. 지난 10년 동안 더치트에 축적된 사기 피해 사례만 20만 건이 넘는다.

하지만 경찰이 더치트와 유사한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더치트의 존재를 위협했다. 경찰은 2010년 2월 ‘넷두루미’(2014년 ‘사이버캅’으로 이름 변경)라는 사이트를 통해 사기 피해 이력을 확인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2013년 8월부터 더치트와 경찰 간의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지만 지난해 5월 경찰청이 네이버와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물 건너갔다. 경찰과 네이버의 협약에 따라 ‘인터넷 사기’ 등 키워드 검색 시 경찰청의 검색 서비스가 상단에 표시됐다. 자연스레 더치트 접속 이용자는 크게 줄어들었다. 김 씨는 “경찰과 협조해 사기 피해를 예방하는 시스템 구축을 꿈꿔 왔다. 그런데 경찰이 만든 유사 서비스에 발목이 잡힐 줄은 몰랐다”고 아쉬워했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 사이버캅은 사기를 예방하기 위한 경찰 내부의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로 더치트와는 무관하다”며 “형식상 비슷하게 보일 수 있지만 경찰 데이터는 범죄와 연관성이 확인된 검증된 자료만을 다룬다”고 밝혔다.

공공기관이 민간 제공 서비스와 중복되거나 유사한 서비스를 만드는 행태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이런 행태는 민간 기업의 창업 의욕을 꺾고 공정한 시장 경쟁을 방해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2012년 4월 서비스를 시작한 ‘아이엠스쿨’이 입소문을 타자 서울시교육청은 2013년 1월 ‘학교 쑥’이라는 유사 서비스 앱을 내놔 ‘표절 논란’을 겪었다. 아이엠스쿨과 학교 쑥 모두 초중고교 가정통신문 등 공지사항을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든 앱이다. 아이엠스쿨 정인모 대표는 “겉으로 보기에 공공 데이터의 민간 활용이 잘 이뤄지고 있어 보이지만 정부기관들의 이중적 태도로 벤처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민간 서비스와 중복되거나 유사한 공공기관 서비스를 조사해 정리할 방침이다. 행정자치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공 데이터의 제공 및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4월에 시행한다. 올 상반기부터 950개(지난해 10월 기준)에 이르는 공공 서비스 앱 실태 조사를 실시한다. 조사 결과 민간과 유사성이 발견된 서비스는 해당 기관에 축소 또는 폐지 등을 권고한다. 지난해에는 기상청 날씨 앱, 국토교통부 브이월드 앱(공간 정보 제공) 등 3개 앱이 폐지되거나 민간 기업으로 기술이 이전됐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더치트#넷두루미#경찰#공공기관#사이트#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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