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슬픈 배달의 역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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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충만 세이브더칠드런 국내옹호팀장
제충만 세이브더칠드런 국내옹호팀장
어린 시절 우리 집 자가용은 시티100 오토바이였다. 아버지는 매일 이 오토바이에 의지해 새벽을 뚫고 출근을 하셨다. 이따금 아버지 등에 매달려 오토바이를 탔는데, 참 크고 따뜻했다. 하지만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아버지는 한사코 나를 오토바이에 태우지 않으려고 하셨다. 위험하다는 이유였는데 아버지의 말은 옳았다. 최근 보도를 보니 2010년부터 5년 동안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는 청소년 2554명이 다쳤고 53명이 숨졌다고 한다. 그나마 산재보험으로 확인된 사고인데 배달대행 청소년의 98%는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고가 아마 더 많지 않을까.

중학생 때 내 짝은 2년 유급한 형이었다. 그 형은 “빠라바라바라밤” 하는 경적 소리가 요란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배달 일을 했다. 다른 아이들은 그 형을 무서워했지만 나는 형 집에 놀러간 적도 있다. 어머니가 안 계시고 아버지는 알코올의존증 환자였다. 그 형은 “별로 ‘가오’는 안 살지만 동생 때문에라도 내가 벌어야 해”라며 일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겨울방학 때 형은 오토바이로 빙판길에서 속도를 내다 넘어져 결국 다리를 절뚝거리게 되었다.

배달 아르바이트 청소년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 중고교생 3명 중 1명은 아르바이트를 경험하고 이 중 30%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생계가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청소년들 일자리가 청장년들로 옮겨가고 최저임금이 곧 최고임금인 상황이다 보니 배달처럼 그나마 수입이 나은 일에 대한 수요는 꾸준하다. 청소년 노동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 한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저 같은 경우는 배달을 안 하면 생활을 할 수가 없어요. 사람들은 청소년이 오토바이 타는 걸 보면 쟤네들은 다 폭주족 같은 애들이라고 생각해요. 어쩔 수 없이 하는 건데 주변에서 그렇게 바라보면 기분이 되게 나쁘죠.”

고등학교 시절 종례시간의 기억도 떠오른다. 담임선생님이 다른 반 학생의 사망 소식을 들려주었다. 그는 30분 배달제로 유명했던 피자집 배달원이었는데 시간에 쫓겨 차로를 가로지르다 마주 오던 차량에 치였다고 했다. 선생님은 “너네 오토바이 타지 마라. 공부나 열심히 해야지 괜히 돈 벌고 싶어서 깝죽거리다 죽어봐야 너네 손해야”라고 소름 끼치는 으름장을 놓았다. 그 친구가 왜 시간에 쫓겼는지는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이후 30분 배달제는 수많은 배달원의 죽음이 잇따른 뒤에야 2011년 폐지됐다.

하지만 여전히 신속배달 신화 뒤에는 청소년들의 신음이 들린다. 배달 중 교통사고는 무리하게 운전하거나 교통법규를 어길 때 잘 발생하는데, 특히 배달 제한시간이 있거나 건당 추가 수당을 받는 경우 그런 일이 잦다는 연구가 나왔다. 아르바이트 구직 사이트를 찾아보니 여전히 30분 배달제의 피자집은 건당 400원의 배달 수당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배달원을 구하고 있었다. 설문 조사에서는 배달을 빨리하라고 재촉을 받은 경험이 청소년 배달원 사이에서 63%에 이르렀다. 또 배달대행의 경우 배달이 늦어져 주문이 취소되면 음식값을 배달원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고 한다. 이러니 목숨을 걸고 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얼마 전 주말 저녁 평소 막히지 않던 대로에 차가 길게 줄을 지어 있었다. 이 시간에 웬 차가 이렇게 막히나 싶었는데, 한 아이가 교차로 한가운데 널브러져 있었다. 헬멧 사이로 앳된 얼굴이 보이는 아이의 상반신은 반쯤 돌아간 채 미동조차 없었다. 옆으로 배달 오토바이가 넘어져 있고 여러 식당에서 받았는지 다양한 음식들이 쏟아져 나와 김을 내며 조용히 식어가고 있었다.

배달이 조금만 늦어도 분노하고 목숨 값으로 비용을 절감하는 일이 흔한 우리 사회에서, 배달 일을 하는 청소년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까. 슬픈 배달의 역사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제충만 세이브더칠드런 국내옹호팀장
#아르바이트#배달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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