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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뉴스룸/유근형]지카 바이러스와 퍼펙트게임

입력 2016-02-15 03:00업데이트 2021-07-2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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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1991년 프로야구 해태와 빙그레의 한국시리즈 3차전. 먼저 2패를 안은 빙그레의 운명을 걸머지고 등판한 송진우는 역투를 이어갔다. 8회 투아웃까지 단 한 차례의 출루도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퍼펙트게임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을까. 이후 연속 안타를 맞고 대기록 대신 패전의 멍에를 써야 했다. 그날의 패배 후 빙그레는 우승을 맥없이 내줬다.

송진우의 후예인 류현진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2014년 미국프로야구 LA 다저스의 류현진은 신시내티전에서 7회까지 21타자를 범타 처리했다. 하지만 퍼펙트게임에 대한 기대감이 흘러나온 8회 연속 안타를 맞고 3실점했다. 긴장 속 TV 앞을 지켰던 국내 팬들은 긴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철지난 야구 이야기가 생각난 건 바로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지카 바이러스 때문이다. 이 바이러스의 국내 유입을 완벽하게 차단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우리 사회에 과도하게 퍼져 있는 것 같다.

전문가 의견을 종합해 보면 지카 바이러스의 국내 유입을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 중남미 등지에서 감염된 환자가 항공편을 통해 입국하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지카 청정지역으로 만들려는 강박에 시달리기보다는 유입 이후의 냉정한 대처가 더 중요하다. 국내 유입이 곧 전염병 창궐로 인식돼선 곤란하다는 얘기다.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위기 발생 시 국민 소통 방법)에 실패했던 지난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돌이켜 보자.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개미 한 마리도 지나치게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정부의 확신에 찬 어조는 ‘신종 감염병은 절대 국내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악(惡)’이라는 인식을 키웠고 이후 더 큰 혼란과 불신으로 돌아왔다. 세계 어느 나라건 하루면 닿는 글로벌 시대에서 감염병은 지진처럼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자연적 현상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은 이래서 나온다.

메르스와 달리 지카 바이러스는 호흡기로는 전염되지 않는다. 성인 감염자의 80%는 별 증상이 없고, 2주가량의 휴식만으로 충분히 회복될 수 있다고 한다. 소두증 우려가 높은 임신부의 지카 바이러스 발생 국가 방문을 자제시키고, 여행 이후라도 헌혈, 성관계, 임신 등 몇 가지만 유의하면 과도하게 공포를 가질 이유는 없다.

국내 무대 시절 류현진은 ‘퍼펙트게임을 절대 달성할 수 없는 투수’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류현진은 주자를 단 한 명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강박적인 피칭보다는, 주자가 나가도 흔들리지 않는 배짱과 뛰어난 완급 조절 및 위기관리 능력을 키우면서 최고 수준의 투수로 성장했다.

감염병에 대처하는 자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 사회를 무균실로 만들겠다는 강박은 역으로 혼란을 키울 수 있다. 균이 침투해도 이겨낼 수 있는 면역력과 냉정한 대응력을 키우는 게 우선이다. 과도한 공포 때문에 혼란을 겪는 일은 메르스 단 한 번이면 충분하다.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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