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도 안 지난 아이에 “ABC” 영아 학원 변질된 문화센터

  • 동아일보

백화점 등 운영… 도넘은 조기교육
신체놀이 등 3,4개 강좌 月50만원… 수강신청때 사이트 다운되기도

지난달 26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열린 생후 28개월 영아 대상의 영재 수업 강의를 듣기 위해 엄마들이 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가고 있다. 서상희 채널A기자 with@donga.com
지난달 26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열린 생후 28개월 영아 대상의 영재 수업 강의를 듣기 위해 엄마들이 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가고 있다. 서상희 채널A기자 with@donga.com
“에프(F)∼. 프로그(Frog·개구리), 플래그(Flag·깃발), 프루트(Fruit·과일), 풋(Foot·발)!”

“으앙!”

지난달 26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백화점에서 열린 생후 21개월 영아 대상 문화센터 수업에서 한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강사가 그림이 그려진 단어카드를 보여주며 노래를 부르자 젊은 엄마 8명이 각자 아이를 품에 앉혀놓고 단어카드를 손가락으로 열심히 가리켰다. 하지만 아이들은 옆에 앉은 친구를 멀뚱히 쳐다보거나 울먹였다. 엄마 품을 탈출해 신발장 옆에서 운동화를 가지고 노는 아이도 있었다.

이 백화점에선 생후 5∼11개월 영아를 대상으로 숫자 개념을 익히게 하는 음악수업도 열렸다. 강사와 엄마가 아이에게 40분간 숫자를 불러주며 숫자가 적힌 컵을 쌓게 하는 수업이다. 이제 겨우 목을 가누고 기어 다니기 시작한 아이들은 숫자 컵을 자꾸 입으로 가져갔다. 수업은 아랑곳하지 않고 기어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많았다.

영아를 대상으로 한 문화센터(문센) 수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영어어린이집, 영어유치원 등 4, 5세부터 시작됐던 조기교육의 시기가 더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생후 5개월 자녀를 둔 주부 김성현 씨(34·여)는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자극을 주는 수업을 해야 애가 똑똑해진다고 들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나쁜 엄마가 되는 것 같아 문센 수업을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의 문화센터 강사 김모 씨(39·여)는 “과거에는 성인 대상 수업이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은 영·유아 수업이 더 많아졌다”며 “교육 시기가 이를수록 발달에 좋다고 하니 요즘 엄마들은 예전보다 빨리 아이를 데리고 온다”고 말했다.

이름 난 문센 수업의 수강신청 기간에는 온라인 사이트 서버가 다운되기도 한다. 유명 포털 사이트의 ‘맘스홀릭’ 카페에서는 “문센 수강신청이 대학 수강신청보다 떨린다”는 글들이 올라온다. 특히 백화점에서 여는 문센 수업은 수업 후 엄마들끼리 육아 정보를 공유하며 식사나 커피 마시기가 편해 인기가 더 높다.

문센 수업에 엄마들은 보통 한 달에 50여만 원을 쓴다. 수업료는 12회에 11만 원 정도인데 오감발달, 신체놀이 등을 주제로 한 수업을 한 달에 3, 4개 듣는다. 6만 원 상당의 음악 CD가 첨부된 교재는 따로 사야 한다. 이보다 훨씬 값비싼 문센 수업도 등장했다. 최근 서울의 한 유명 백화점이 개설한 ‘프리미엄 오감 통합놀이’ 수업은 30분 수업, 11회에 50만 원을 받는다.

전문가들은 영아 대상 조기교육에 회의적이다. 심미경 인제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생후 5∼10개월 영아에게 구조화된 교육은 효과가 없다. 영아는 인지적 접근이 아니라 정서적인 접근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정욱 덕성여대 유아교육과 교수도 “영아 땐 엄마와의 신체접촉 등 교감을 통한 애착관계 형성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적극적으로 육아하고 싶은 부모 마음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전주영 aimhigh@donga.com·서상희 채널A기자
#영어학원#문화센터#조기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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