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문 첫날밤 해외서 노숙할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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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챙긴 ‘먹튀 여행사’ 피해 속출… “몰디브 등 싼값 신혼여행” 유인
현지 가보니 호텔비 결제 안돼… 항공권 취소로 아예 출국 못하기도

지난달 28일 결혼식을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김미정(가명·33·여) 씨 부부는 몇 시간째 발만 동동 구르다 멍하니 앉아 있기를 반복했다. 예정대로라면 이미 괌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 있어야 했다.

그러나 항공권과 각종 일정표 등을 전해주기로 한 여행사 직원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항공권 발권 부스에서도 부부 이름으로 예약된 항공권이 없다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괌 현지 숙소에 연락해 보니 “당신 명의의 숙박 예약이 오늘 갑자기 취소됐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결국 김 씨 부부는 괌이 아닌 신혼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김 씨는 “가족이나 지인들에겐 창피해서 말하지도 못했다. 나한테 여행상품 예약을 맡겼던 남편에게 미안해 얼굴을 들 수가 없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최근 김 씨처럼 신혼여행을 떠나는 부부를 대상으로 한 사기가 늘고 있다. 비교적 가격이 비싼 신혼여행 상품을 싼값에 내놓고는 여행사가 돈만 챙겨 잠적해 버리는 식이다. 사기 여행사들은 예비부부가 결혼 준비로 바쁘다 보니 항공권, 숙소 예약 등 진행 상황을 꼼꼼하게 챙기지 않는다는 점을 노렸다.

지난달 21일 결혼식을 올린 이하령 씨(27·여)도 비슷한 사기를 당했다. 올 3월부터 신혼여행 계획을 세웠던 이 씨는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N여행사의 광고를 발견했다. 다른 여행사보다 저렴한 데다 여행용 가방도 덤으로 준다는 말에 이 여행사와 바로 계약했다.

하지만 결혼식 다음 날 공항에 도착해 보니 이 씨 이름으로 예약된 항공권은 없었다. 여행사에 전화를 해보니 N여행사 대표는 “절차상 오류가 있었던 것”이라며 편도 티켓을 끊어줬다. 이 씨는 “우선 출발하면 돌아오는 티켓도 바로 끊어서 보내주겠다”고 해 다소 찜찜했지만 일단 여행지로 떠났다.

더 황당한 일은 현지에서 일어났다. 현지 숙소 직원이 이 씨에게 “N여행사 대표가 숙박비를 결제하지 않은 채 잠적해 버려 숙박비를 받지 못했다”며 “숙박료 270만 원을 내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이 씨는 현지에서 숙박비를 낸 뒤에야 귀국할 수 있었다.

3박 6일짜리 몰디브 여행상품 2명분을 520만 원에 구매한 김모 씨(33·여)도 N여행사에서 비슷한 피해를 입었다. 김 씨는 출국 당일 공항에서 탑승 수속을 하려다 자신의 비행기표가 출국 나흘 전에 취소됐다는 얘기를 듣고 망연자실했다.

서울시관광협회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 신혼여행 관련 피해 접수는 200여 건. 특히 N여행사 관련 신고가 이 중 44건에 이른다. N여행사 관련 피해자들의 인터넷 카페에는 ‘여행 당일 N여행사와 연락이 되지 않아 결국 여행을 떠나지 못했다’ ‘입금 후 대표가 잠적해 버리는 바람에 다른 여행사와 계약하느라 돈이 두 배로 들었다’ 등의 다양한 피해 사례가 올라오고 있다.

피해가 급증하자 경찰도 수사에 나섰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잠적한 N여행사 대표 우모 씨(44·여)를 사기 혐의로 수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와 피해 금액 규모를 파악하고 있다. 조사가 끝나는 대로 우 씨에 대한 수사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관광협회 관계자는 “신혼여행은 보통 평생 한 번 떠나기 때문에 더 좋은 시설과 관광 코스를 제공하는 관계로 일반 여행상품보다 비싼 편”이라며 “좀 더 싼 상품을 찾으려는 심리를 노린 사기가 많은 만큼 믿을 수 있는 여행사인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창규 kyu@donga.com·강성휘기자
#먹튀 여행사#여행사#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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