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깡, 美에선 합법 서비스… 해외직구 늘면서 무분별 이용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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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결제서비스 ‘페이팔’ 이용한 불법 카드깡 국내 확산

미국 유학을 다녀온 직장인 임모 씨(33)는 ‘페이팔깡’을 종종 이용한다. 페이팔 홈페이지에 접속해 돈이 필요한 만큼 신용카드를 긁은 뒤 자신의 은행 계좌로 돈을 송금 받아 현금을 뽑아 쓴다. 임 씨는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보다 수수료가 싸고 신용등급도 나빠지지 않아 현금이 필요할 때 30만∼50만 원씩 쓰곤 한다”고 말했다.

페이팔깡은 해외 사이트에서 결제가 가능한 신용카드를 사용해 자신의 계좌로 현금을 받아 쓰는 일종의 ‘카드깡’이다. 페이팔의 ‘카드로 송금하기’ 서비스를 쓰면서 돈 받을 사람의 e메일 주소에 자신의 다른 e메일 주소를 적는 것만으로 가능하다. 페이팔깡은 임 씨 같은 유학생이나 미국에서 오랫동안 머문 경험이 있는 젊은층, 해외 직접구매(직구)를 이용하면서 페이팔을 써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번지고 있다. 페이팔에서 카드 송금 시 수수료는 10달러 이하는 64센트, 10달러가 넘으면 이용 금액의 3.3∼3.9%다. 이에 비해 카드사들의 현금서비스 수수료는 연 20%대다.

페이팔 계정에 있는 돈을 국내외 은행 계좌로 보낼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카드를 긁어 자신의 페이팔 계정에 현금을 충전할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카드를 이용한 송금 및 결제 서비스만 이용할 수 있다.

미국 호주 등에서는 카드깡이 합법이다. 이 때문에 슈퍼마켓 등 카드 가맹점들도 물건값에 상관없이 고객이 원하는 만큼 카드를 결제해주고 대신 현금을 지급하는 ‘캐시 아웃(cash out)’ 서비스를 제공한다. 맥도널드에서 5달러짜리 햄버거를 산 뒤 카드로 50달러를 결제하면 차액 45달러를 현금으로 받을 수 있다.

반면 국내에서 카드깡은 불법이다.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이 법을 어기고 카드깡을 한다. 최근에는 옥션, 지마켓 등 오픈마켓을 이용한 카드깡도 성행하고 있다. 돈이 필요한 사람이 오픈마켓에서 물품을 구입하면서 이보다 큰 금액을 카드로 결제한 뒤 판매자들로부터 차액을 현금으로 돌려받는 식이다.

국내 카드사들은 페이팔깡이 확산될까 경계하고 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카드 회원이 페이팔로 ‘깡’을 해 돈을 당겨쓰고난 뒤 결제대금을 갚지 않으면 고스란히 카드사가 피해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페이팔깡이 카드깡 수단을 넘어 외화 유출, 자금 세탁 등에 쓰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금화한 돈을 어디에 쓰든 카드 결제 명세에는 페이팔이라는 가맹점 정보만 남는다. 예를 들어 내국인이 필리핀에서 페이팔깡을 통해 필리핀 현지 은행으로 송금을 받은 뒤 이 돈을 찾아 불법 도박 자금으로 쓴다고 해도 적발할 방법이 없다.

연간 1만 달러 이하로 이용한다면 외환관리망의 감시도 피할 수 있다. 외국환 거래 규정에 따라 연간 해외 카드 이용 금액이 1만 달러를 넘으면 카드사는 국세청과 관세청에 이듬해까지 이를 통보해야 한다. 카드를 불법 복제해 현금화하는 범죄에 악용될 수도 있다.

하지만 금융 당국은 페이팔이 미국 기업인 데다 정식으로 한국에 진출해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어서 규제할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페이팔깡이 국내에 확산될 경우 금융거래 질서가 흔들릴 수 있지만 마땅히 대응할 수단이 없어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 ‘간편결제’ 페이팔 시스템은 ::

카드결제 연결해주고 수수료 챙겨

페이팔은 세계 최대의 전자결제 시스템업체다. 피터 틸과 맥스 레브친이 1998년 공동 창업한 미국의 데이터 보안업체 콘피니티는 이 시스템을 개발해 e메일로 돈을 송금해주는 사업을 시작했다. 1999년 이 회사가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엑스닷컴(X.com)에 인수돼 지금의 페이팔 서비스가 탄생했다. 페이팔은 2002년 이베이에 팔려 자회사가 됐다가 지난달 분사됐다. 페이팔은 구매자와 판매자를 중계해주는 에스크로(결제대금예치업) 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수료를 챙긴다. 신용카드 번호나 계좌번호를 알리지 않고 거래할 수 있으며 양측이 사용하는 통화(通貨)가 다르면 페이팔이 환전을 대행해준다. 본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고 올해 2월 웹사이트에서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했다.

신민기 minki@donga.com·박민우 기자

김철웅 인턴기자 한양대 경영학과 4학년
#카드깡#페이팔#국내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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