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은평구 동명여고에서는 여름방학임에도 과학실험반 학생들의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학생들이 저마다 실험 주제와 방식을 제안하면 과학교사인 조선아 씨(33)는 “배경이론을 더 검토해야 할 것 같은데” “실험 설계는 어떻게 하는 게 좋겠니”라는 식으로 아이들과 의견을 나눴다. 그때마다 학생들은 책상에 수북이 쌓인 책과 논문을 넘겨보며 토론을 벌였다. 동명여고와 같은 일반고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다.
최근 몇 년간 일반고는 교육환경 악화와 학생들의 성적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2010년 서울에 자율형사립고 25곳이 생겨난 뒤 중학교에서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은 특수목적고와 자사고에 몰렸다.
2012년 여름방학에 처음 개설한 과학실험반에는 20명이 모였다. 아이들은 처음엔 얼떨떨해 했지만 조 교사가 “우리는 과학자도 아니고 과학고 학생들도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자”고 독려하자 곧 갖가지 연구 주제를 짜냈다. 어떤 학생들은 대학교 수준의 주제를 가져오기도 했다.
과학실험반 2기가 열린 2013년, 조 교사는 한발 더 나아가 ‘논문 쓰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조 교사는 기초이론 찾는 법, 연구주제를 세우는 법, 실험방법을 계획하는 법을 차근차근 가르쳤고 학생들은 학교 근처 도서관의 자료들을 뒤져가며 논문집까지 펴냈다.
이런 시도는 학교 전체를 바꿨다. 과학실험반 학생들은 서울 소재 대학의 이공계 학과에 합격하며 학교의 진학률을 끌어올렸다. 대입 자기소개서나 면접에서 과학실험반의 특별한 경험이 강점이 됐다. 지난해에는 과학실험반을 벤치마킹한 ‘사회과학 논문반’도 개설됐다. 인문계반 교사들이 모여 과학실험반의 성과를 인문계에도 적용할 방법을 궁리한 끝에 논문반을 만든 것. 덕분에 인문계 학생들도 사회과학 분야의 이론을 공부하고, 실험하고, 논문을 쓰는 기회를 갖게 됐다.
과학실험반을 거쳐 대학에 진학한 아이들은 다시 모교를 찾아 후배들의 실험을 도와주기도 한다. 조 교사의 이런 활동은 최근 교육부가 진행한 ‘일반고 교육역량강화 수기 공모전’에서 인정받아 조 교사는 수도권 교사 중 유일하게 수상(동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