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서류만 보고 ‘뚝딱’… ‘농업 보조금’ 줄줄 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인력부족 이유로 현장점검 소홀… 가짜 계산서 발급해 보조금 ‘꿀꺽’
대구지검, 농민 등 21명 기소

경북 성주군 초전면에서 표고버섯 농사를 짓는 이모 씨(55)는 2012년 1월 군청을 찾아가 정부의 재배시설 보조사업 신청서를 냈다.

성주군은 절차대로 이 씨가 채무나 연체가 없어 자격이 되는지 성주군산림조합에 신용 조사를 요청했고 ‘양호하다’는 답을 받았다. 이 씨는 2013년 2월 보조금 지원 사업자로 결정됐다. 신청자는 이 씨 1명뿐이었다. 그해 5∼11월에는 5900만 원을 빌려 1455m²에 시설하우스 7동을 완공했다. 하지만 그는 버섯 종균조차 구입할 돈이 없는 금융채무 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였다. 이 과정에서 가짜 세금 계산서를 성주군에 제출해 정부 보조금 3200만 원을 받아 챙겼다.

이처럼 농업 분야의 보조금을 빼돌리는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철저한 현장 점검이 예방책이지만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성주경찰서에 따르면 이 씨는 2009년 수천만 원의 채무 때문에 금융채무 불이행자가 됐다. 해당 금융기관은 이 씨가 갚을 능력이 없다고 판단해 특별 채권으로 분류했고 자체 비용으로 충당했다. 이 과정에서 금융 전산망에 있던 이 씨의 신용불량 자료도 없어졌다. 성주군산림조합의 신용 조사에서 걸러지지 않은 이유였다. 조합 측은 전산망에 나온 대출 가능 여부만 파악해 지자체에 알려준다.

성주군 공무원 박모 씨(32)도 산림조합의 서류만 보고 신청서를 받아줬다. 담당 계장과 과장의 결재도 통과했다. 박 씨는 농자재 업체에 찾아가 가짜 세금 계산서 발급도 강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체 사업비 8000만 원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사비도 부풀리도록 했다. 연말까지 보조금 집행을 하지 않으면 예산을 반납하는 등 처리 과정이 복잡해지고 실적도 사라질 수 있어 불법을 저질렀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성주군은 법원 판결 이후 박 씨를 징계 조치할 계획이다.

경찰은 23일 이 씨는 사기, 박 씨는 직권남용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관계자는 “여러 기관이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보조금이 새는 것은 서류 검토만 하고 현장 점검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며 “비슷한 사례가 있는지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지검 특수부는 지난달 26일 지자체가 지원하는 농기계 구입 보조금을 부정 수급해 가로챈 농민 김모 씨(53) 등 3명을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농기계 판매업자와 농사시설 시공업자 등 18명은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허위로 작목반을 구성해 농기계 구입 보조금을 타 내는 방식으로 10억9000여만 원을 챙겼다. 지원 기준 논밭 면적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 명의를 도용하거나 구형 기계를 산 뒤 신형 기계를 구입한 것처럼 가짜 서류를 만들었다.

지자체들이 농업 보조금과 관련해 형사 고발되면 지원 대상에서 영구 제외하는 등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불법이 줄지 않고 있다. 경북도 관계자는 “보조금 중심의 농민 지원을 융자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서류#농업 보조금#꿀꺽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