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8만원 약을 50만원에… 中의료브로커 ‘가짜 처방전’ 받아 약장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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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 중개 단속 강화되자 의약품 손대… 병원서 처방전 한꺼번에 대량 발급
다이어트 등 약-분량, 간호사가 手記… 중국판 카톡 ‘위챗’ 통해 재판매

왕모 씨가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린 ‘인증 사진’. 왕 씨는 자신이 판매하는 전문의약품이 ‘진짜 한국 약’임을 증명하기 위해 글과 함께 성형외과에서 처방전을 발급받는 사진(왼쪽)과 약국에서 약을 직접 사는 사진을 올렸다. 왕모 씨 SNS 화면 캡처
왕모 씨가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린 ‘인증 사진’. 왕 씨는 자신이 판매하는 전문의약품이 ‘진짜 한국 약’임을 증명하기 위해 글과 함께 성형외과에서 처방전을 발급받는 사진(왼쪽)과 약국에서 약을 직접 사는 사진을 올렸다. 왕모 씨 SNS 화면 캡처
불법 의료 브로커들이 진화하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들을 서울 강남 일대 성형외과에 연결해 주고 수수료 명목으로 거액을 챙기는 미등록 불법 브로커 단속을 강화하자 사업 영역을 바꿔 전문의약품 판매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중국인 환자를 유치해 주면서 쌓은 영향력을 바탕으로 강남 일대 성형외과에서 처방전을 발급받아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을 구입해 중국인에게 판매하고 있다.

경기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27일 서울 강남구 모 성형외과에서 불법으로 처방전을 발급받아 다이어트 약 등을 구매해 중국인들에게 재판매한 왕모 씨(26·여·중국) 등을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 등에 따르면 왕 씨는 지난해까지 중국인 환자를 국내 병원에 소개해주고 적정 수수료를 받는 합법적인 외국인 환자 유치업체에서 일했다. ‘환자 유치’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안 왕 씨는 올해 초 직원 5∼6명을 채용해 불법적인 환자 유치업체를 차렸다. 검찰 등 수사기관이 불법 브로커 단속을 강화하자 왕 씨는 단속을 피하기 위해 사업을 다각화했다. 환자 유치 중개 수수료를 받기보다 중국에서 인기 있는 한국 의약품을 중국인들에게 팔기로 했다.

왕 씨는 먼저 성형외과에서 자신의 중국인 직원 명의로 처방전을 대량으로 발급받기 시작했다. 외국인 환자 유치업체 관계자는 “환자 유치의 큰손이었던 왕 씨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 성형외과 측이 별다른 확인 없이 처방전을 불법으로 대량 발급해줬다”며 “처방전 양식에 간호사가 수기로 약품 이름과 복용량을 적는 방식으로 왕 씨에게 처방전을 그냥 내줬다”고 말했다.

불법으로 확보한 전문의약품은 중국판 카카오톡인 ‘위챗’을 통해 재판매됐다. 왕 씨가 확보한 약품들의 사진을 위챗에 올리면 미용에 관심이 많은 중국인들이 직접 주문하는 방식이었다.

왕 씨는 ‘가짜 한국 약품을 판매하는 중국인이 많은데 제가 판매하는 약들은 정식 유통 경로를 거쳤다’는 글과 함께 성형외과에서 발급받은 처방전 사진, 자신이 약국에서 직접 약품을 구매하는 사진 등 ‘인증샷’을 찍어 올려 고객들을 안심시켰다.

주문량이 많아지자 주문을 받으면 그때그때 처방전을 발급받아 약품을 확보하는 방법 대신 대량의 약품 구매가 가능하도록 미리 처방전을 발급받았다. 판매 대금은 온라인 결제가 가능한 중국의 ‘알리페이’를 통해 현금만 받았다. 결제가 완료되면 국제우편(EMS)을 통해 직접 중국 고객의 주소로 약품을 보냈다.

이렇게 거래한 약품은 왕 씨의 공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확인된 것만 한 달 평균 15박스(다이어트 약 기준). 1박스에 8만 원가량을 주고 산 다이어트 약을 50여만 원에 재판매했다. 5배가 넘는 폭리를 취한 것. 경찰은 왕 씨가 손에 넣은 부당 이득과 실제 거래량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관광비자로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왕 씨가 전문의약품 판매 외에 중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통역 및 관광 가이드를 하며 부가적인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왕 씨 외에 기존 불법 브로커들의 변형된 불법 행위에 대해서도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왕 씨를 의료법과 약사법 위반 혐의로 쫓는 한편 처방전을 내준 성형외과 등을 상대로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불법#의료브로커#가짜 처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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