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新명인열전]달군 쇠 두드리기 40년…“세상 근심도 함께 두드려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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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자 대장장이 정길순씨

40년 여자 대장장이 정길순 씨(65)가 평생 내려친 망치질은 어림잡아 700만 번. 그녀는 남자도 하기 힘든 쇳일을 40년간 하면서 칼날같이 모진 세월을 견디며 명품 남원 식칼의 명맥을 이어 온 장인이다. 남원시 제공
40년 여자 대장장이 정길순 씨(65)가 평생 내려친 망치질은 어림잡아 700만 번. 그녀는 남자도 하기 힘든 쇳일을 40년간 하면서 칼날같이 모진 세월을 견디며 명품 남원 식칼의 명맥을 이어 온 장인이다. 남원시 제공
칼날같이 모진 세월이었다.

술독에 빠진 남편 대신 자식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 시뻘겋게 달군 쇠를 두드리기 40년, 이제 몸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지만 그녀의 마음은 무쇠보다 단단해졌다. 그녀가 만든 칼은 명품으로 대접받는다. 미국으로 이민 간 교포도 칼을 사러 찾아온다. 하루 500번만 잡아도 그녀가 평생 내려친 망치질은 어림잡아 700만 번.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를 이겨 낸 전북 남원의 40년 대장장이 정길순 씨(65·부흥식도 대표) 얘기다.

○ 혼 어린 땀방울로 남원 칼 명맥 이어

1975년 5월 28일. 정 씨가 생일보다 더 또렷이 기억하는 날짜다. 그녀가 처음 쇠망치를 잡은 날.

1973년 순창에서 남원 5남매 집안의 큰며느리로 시집왔다. 남편은 솜씨 좋은 대장장이였지만 술이 문제였다. 대장간도 모두 술 때문에 날아갔다. 그대로 앉아 굶어 죽을 수는 없었다. 결혼 패물을 팔아 풀무와 모루를 장만했다. 새벽 4시면 대장간에 나가 쇠를 달구고 두드리기를 반복했다. 뭐든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었다. 줄줄이 태어난 네 남매를 생각하면 잠도 오지 않았다. 여자가 만든 칼이라고 무시당하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정교함은 오히려 장점이 됐다. 시뻘겋게 달군 쇠를 강약을 조절하며 망치로 두드리고 담금질을 하다 보면 걱정거리가 사라졌다. 칼날을 갈다 보면 세상 근심이 순식간에 불꽃처럼 훨훨 날아가 버렸다. 무아지경에 빠져 쇠를 두드리다 보면 날이 하얗게 새는 줄도 몰랐다.

“하루 종일 쇳가루 먹어 가며 칼을 만드는 일이 너무 힘들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그만두고 싶었지. 한여름이면 대장간 온도가 50도를 넘어가요.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배운 재주는 이것뿐이어서’ 다시 쇠망치를 잡을 수밖에요.”

남편은 1998년 뇌출혈로 쓰러진 뒤 16년 병치레를 하다 지난해 떠났다. 무쇠를 마치 떡 주무르듯 하지만 돌아가신 친정어머니와 남편 얘기를 할 때는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정 씨는 지금도 하루 10시간씩 화덕에서 시뻘겋게 달궈진 칼을 집게로 꺼내 모루 위에 얹어 놓고 망치로 내려치고 풀무질·메질·담금질·날 갈기를 계속한다.

그가 만들어 내는 칼의 종류는 부엌칼·생선회칼·꼬막칼 등 10여 가지. 낫·도끼·작두·곡괭이 등 못 만드는 것이 없지만 식칼에 집중한다. 모두 최고의 재질로 인정받는 기차 레일만을 재료로 삼는다. 2000도나 되는 무연탄 화로에 달군 뒤 칼날을 물에 식히며 손으로 직접 담금질하는 전통 기법으로 생산하고 있다.

○ 아들은 가업 잇고 딸은 부가가치 높여

예부터 남원에는 널리 알려진 세 가지 명품이 있다. 광한루의 성춘향과 옷칠 입힌 목기, 그리고 식도(食刀)다(최근에는 춘향 대신 추어탕을 꼽기도 한다).

남원에는 ‘철의 왕국’이었던 가야문화권의 철기문화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니켈이 섞인 질 좋은 철광석이 많다. 남원 칼이 더욱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2년 오늘날의 산업제품 경진대회라고 할 수 있는 ‘조선부업공진대회’에서 남원 노암동에 살던 한영진 씨가 출품한 부엌칼이 금상을 받으면서부터다. 그는 이발소에서 사용하는 면도칼의 원리를 이용해 만들었는데 칼의 날이 얇고 날카로워 큰 호응을 얻었다. 광한루 일대에는 성냥간(대장간) 골목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남원 칼은 1980년대까지 부흥기를 맞았으나 사출기를 이용한 대량 생산과 스테인리스 같은 신소재가 보급되면서부터 점차 쇠퇴했다.

그러나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였다. 남원 칼이 드라마 ‘대장금’에 소개되고 ‘살림의 여왕’으로 불리는 이효재 씨가 정 씨의 칼을 소개하면서 다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한 상궁이 요리하는 장면에 등장하는 ‘다소 투박하고 묵직해 보이며 거무튀튀한 모습의 그 칼’이 바로 전통 방식으로 강철을 직접 두드려 만든 남원 칼이다.

남원 식칼은 소칼·중칼·대칼로 나뉘는데 이 제품들은 아홉 번 벼리는 과정을 거치며 재질의 밀도와 유연성이 조화를 이룬다. 남원 식칼은 지금도 전통 식도 부문 전국 소비량의 70%를 차지한다고 한다.

요리 전문가들도 “칼이 손에 딱 잡히고 써는 데도 힘이 안 든다. 전통 칼은 숫돌은 물론 질그릇에만 갈아도 날이 살아난다”며 남원 칼을 칭찬한다. 남원 칼이 좋다고 소문이 나자 엉뚱하게도 “날이 긴, 일명 조폭용 칼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아무리 거금을 준다고 해도 절대로 만들어 주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을 살리는 남원 칼의 자부심이다.

몇 년 전부터 남원의 7개 식도 생산 업체들은 ‘춘향골 남원식도협의회’를 구성하고 ‘남향일도’(南香逸刀·남원 춘향골에서 생산되는 뛰어난 칼이라는 의미)라는 브랜드로 명품 활성화를 모색해 왔다.

부흥식도 대장간에는 요즘 그녀의 든든한 후원군이 늘었다. 10년 동안 신경외과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던 외아들(37)이 지난해부터 어머니에게서 대장일을 배우고 있다.

공예를 전공한 딸은 칼자루에 옻칠을 하고 자개를 입혀 부가가치를 높인다. 정 씨가 만드는 칼은 어현동 대장간 앞과 광한루 앞의 시연 판매장에서도 팔지만 대부분 전국의 도매상으로 넘어간다.

“먹고살기 위해 시작했지만 내가 만든 칼이 전국의 식당이나 가정집에서 쓰인다니 얼마나 가슴이 뿌듯해. 갈수록 재미와 성취감이 더 커진다니까. 남을 해치지 않고, 온갖 잡귀들을 몰아내고 집집마다 행복을 가져다주는 그런 좋은 칼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지. 세상을 살리는 나만의 활인검을 만들고 싶어.”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여자#대장장이#정길순#땀방울#남원#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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