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과 애 키우는게 뭐 힘드냐는 남편… 참, 너무합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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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행복원정대/엄마에게 날개를]<5>아내 마음 모르는 남편들
남편이 보는 아내의 행복점수 79점… 엄마들이 매긴 72점과 가장 차이 커
아내의 희생 당연하다 여기지만 뭘 좋아하는지, 행복한지 잘 몰라

“온 가족이 외식하거나 해외여행을 갔으면 좋겠어요. 남편이 ‘엄마 때문에 아이 성적이 안 좋은 거야’라고 말할 땐 상처받죠. 집안일 분담은 내가 90%, 남편이 10%, 내 행복 점수는 70점이에요.”(아내 강모 씨·42)

“아내는 혼자 TV 보거나 쇼핑하는 걸 좋아하죠. 그래서 방해하지 않으려고 아내 눈에 안 띄려고 해요. 집안일은 내가 30%는 해요. 아내가 언제 상처받느냐고요? 상처를 받는 성격이 아니에요. 아내의 행복 점수는 80점입니다.”(남편 김모 씨·44)

맞벌이 부부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지만 대답은 엇갈렸다. 김 씨처럼 아내가 뭘 좋아하는지, 지금 생활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모르는 남편들이 많았다. 동아일보 심층인터뷰에 응한 30∼50대 ‘엄마’들 50명은 자신의 행복 점수를 7.2점(10점 만점)이라고 했지만 ‘남편’들 20명은 7.9점이라고 가늠했다. 가족 구성원들 가운데 ‘엄마’와의 점수 차가 가장 컸다.

‘엄마’들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으로 ‘몰두할 수 있는 일’(15명)을 꼽았다. 반면 아내에게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한 남편은 20명 중 1명이었다.

○ “힘들어요” vs “유난 떨지 마요”

전업맘들은 “출퇴근 개념도 없이 집안일 하는 어려움을 몰라준다” “집에서 논다고 무시한다”며 서운해했다.

“내가 힘들다고 하면 남편은 ‘왜 유난스럽게 그러느냐. 엄마 세대는 밭에서 일하다 아이 낳았다’라고 해요. 남편은 ‘정 힘들면 사람을 쓰든가 어린이집을 보내라’고 하고, 요즘 어린이집 아동 학대 소식 때문에 싫다고 하면 ‘그럼 어쩌란 말이냐’라고 화내죠. 그저 힘들다는 걸 알아줬으면 하는 건데….”(김모 씨·37)

“남편은 집에만 들어오면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않아요. 아이들도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라 공부방에서 큰소리로 ‘엄마 물’ 하고 소리치며 저를 하인 부리듯 하죠. 하루는 동물이 나오는 TV를 보다 펑펑 울었어요. 동물들 사이에 서열이 분명하고, 서열이 낮은 동물은 무시당하더라고요. 저처럼요.”(허모 씨·49)

아이 때문에 집 안에 들어앉은 엄마들의 서운함은 더했다.

“둘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직장을 그만뒀어요. 남편이 돌변하더군요. 저녁 약속도 많아지고, 주말에도 나가는 일이 잦아졌죠. 분담하던 일들이 모두 내게 한꺼번에 밀려와 힘든데 모르는 척하니 스트레스를 받아요.”(이모 씨·41)

“낳으면 다 길러준다는 정부와 양가 부모님에게 속아서 아이 낳고 많이 울었어요. 일을 그만두고 육아가 오롯이 내 몫이 돼 서러웠죠. 말 못하는 두 아이와 하루 종일 씨름하고 허기가 져서 남편에게 퇴근길에 김밥을 사오라고 했어요. 그런데 편의점 삼각김밥을 사온 거예요. 그 김밥을 던지고 나와 버린 적이 있어요.”(백모 씨·37)

○ “난 커리어우먼” vs “당신은 아이 엄마”

맞벌이인 집도 부부가 집안일을 절반씩 분담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아이가 어릴 땐 남편이 도와줬는데 학령기가 되니 애 숙제 봐주고 하는 건 엄마더군요. 내게 맡겼으면 말이나 말든가, 가끔 ‘애 공부 가르쳐줄 때 화내지 말라’고 해요. 자기한테 해보라 하면 10분 만에 애한테 화내고 있어요.”(최모 씨·41)

“직장 다니며 아이를 키우는 내 또래 여성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대부분 남편에게 늘 화가 나 있어요. 남편이 싫다기보다 (일과 가정 사이에서 줄타기해야 하는) 이 상황이 싫은 거죠.”(김모 씨·41)

남편은 신경이 곤두서 있는 아내가 불만이다. “아내가 가끔 남자들을 집단화해서 도매금으로 비난할 때가 있어요. 반면 여자는 피해자일 뿐이고 항상 불쌍한 존재라는 식으로 말하죠.”(정모 씨·36)

직장맘들이 힘든 이유는 일과 가정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는데 둘 다 잘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성은 본능이고, 일보다는 아이가 우선”이라는 남편의 태도는 아내를 더욱 힘들게 한다.

“남편 직장 동료 가운데 회사를 다니면서도 1년간 모유 수유를 한 여직원이 있어요. ‘당신도 내 아이에게 그런 엄마가 돼 줬으면 한다’고 해서 스트레스 받았죠.”(맞벌이 주부 김모 씨·42)

“자기의 노력에 대해 반대급부를 원하는 엄마, 가정을 위해 희생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엄마, 자녀의 행복보다 자신의 행복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엄마는 신(新)칠거지악의 죄인이라고 봅니다.”(맞벌이 남편 이모 씨·59)

■ 딸이 아내처럼 산다면

“아내가 내게 시집와서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 건 원하지 않는다. 여자가 자기 일 할 필요 없이 편하게 살 수 있는 그런 가정에 시집보내고 싶다.” (외벌이 박모 씨·55·공무원)

“결혼은 피할 수 없다. 혼자 살고 싶어도 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이렇게 고생하는 것도 싫고, 어려운 문제다.” (맞벌이 하모 씨·40·회사원)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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