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피해액 2165억…전년 보다 58.6% 늘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8일 21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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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 이 검사인데요. 갖고 계신 은행 계좌가 보이스 피싱 조직에 넘어갔습니다.”

7일 오후 사무실에서 일을 하던 신모 씨(31·여)의 휴대전화로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을 이모 검사라 밝힌 남성은 신 씨에게 “보이스피싱 조직을 검거해 대포통장과 유출된 보안카드 수십 건을 확보했는데 그 중 신 씨의 계좌가 포함돼 있다”며 구체적인 계좌정보를 묻기 시작했다.
신 씨가 화들짝 놀라 어느 은행의 계좌가 유출된 것인지 묻자 남성은 ‘A은행과 B은행이다’고 답했다. 하지만 김 씨는 B은행에 계좌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제야 전화 상대방의 말투에 중국 동포 특유의 억양이 배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전화를 끊었다. 신 씨는 당시 손발이 떨렸던 경험을 털어놓으며 “보이스피싱이 문제된 지 몇 년이 지났는데 왜 아직까지 이렇게 기승을 부리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보이스피싱 조직들의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며 사기 피해 규모도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해 뚜렷하게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해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금융당국이 뒤늦게 보이스피싱 등 ‘5대 금융악’을 근절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금융사기 피해액은 2165억 원으로 전년(1365억 원)에 비해 58.6% 늘었다. 보이스피싱 피해액에 대한 공식 집계가 시작된 2012년(1154억 원)과 비교하면 2년 새 2배 수준으로 증가한 것이다.

보이스피싱 금융사기에 이용된 대포통장의 수는 지난해 4만4705건이나 됐다. 대포통장 수는 2012년 3만3496건, 2013년 3만8437건 등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감독당국이 그간 보이스피싱 범죄에 안일하게 대응해 피해 규모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사실 지금까지 보이스피싱을 생계형 ‘잡범’ 정도로 생각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하지만 올해부터는 보이스피싱을 뿌리 뽑기 위한 강도 높은 대책들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이날 서태종 수석부원장을 단장으로 한 ‘민생침해 5대 금융악(惡) 척결 특별대책단’을 꾸렸다. 5대 금융악은 서민 등 취약계층에게 금전적인 피해를 주는 보이스피싱, 불법 사금융, 불법 채권추심, 꺾기, 보험사기 등이다.

금감원은 보이스피싱을 근절해야 할 첫 번째 금융악으로 꼽고 다음주 중 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다른 계좌로부터 입금된 돈을 찾을 경우 30분 정도 기다려야 인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인출 한도를 축소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보이스피싱 범죄를 적발했을 때 빠르게 범인을 검거할 수 있도록 경찰청과 핫라인을 구축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서태종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금융사기 범죄를 수사한 경험이 많은 퇴직경찰관을 특별대책단의 자문역으로 임명할 계획”이라며 “금융질서를 어지럽히는 범죄 행위를 최대한 줄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송충현기자 bal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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