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기업’ 탈 쓴 유학파 오페라단, 보조금 횡령 ‘짝짜꿍’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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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이탈리아 국립음악원을 졸업한 박모 씨(37). 정통 엘리트 코스를 거친 그의 앞날은 탄탄대로처럼 보였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귀국한 뒤 유명 오케스트라나 음악단에 쉽게 취업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박 씨는 개인 레슨과 교회 성가대 아르바이트 등으로 월 300만∼400만 원을 벌어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언젠가 다가올 기회를 잡으려면 안정적인 직장 경력이 필요했다. 박 씨는 수소문 끝에 지난해 6월 경기 수원시에 있는 J오페라단에 취업했다. 보수는 월급 50만 원과 4대 보험 가입. 그 대신 매달 4, 5차례 공연 가운데 두 차례를 무료로 공연해야 하는 조건이었다. 박 씨가 이런 열악한 조건을 감수한 이유는 J오페라단이 2010년 지정된 예술 분야 사회적 기업이기 때문이다. 예술 분야 사회적 기업에 취업하려면 직전 1년간 소득이 없어야 가능하다. 박 씨는 레슨 등으로 적지 않은 수입을 올렸기 때문에 자격이 없다. 그러나 박 씨는 ‘경력 관리’에 마음이 급해 5개월간 단원으로 일했고 결국 범법자 신세가 됐다. 그는 경찰에서 “경력을 쌓기 위해 잠시 한눈을 판 것이 잘못이었다”며 뒤늦게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7일 경기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따르면 J오페라단 단장 최모 씨(57)는 2011년 10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오페라단을 운영하며 실제 출근하지 않은 단원들의 출석부를 수시로 조작했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194차례에 걸쳐 경기도와 수원시로부터 급여비 1억7000만 원을 받아낸 혐의다. 최 씨는 단원들에게 지급하고 남은 돈 7000만 원을 자신이 챙겼다. 또 각종 공연을 진행하며 행사비를 부풀린 뒤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한 사업개발비 육성사업비 등 2억 원을 부정 수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무대 설치비, 조명비, 의상비 등을 지출하고 해당 업체로부터 일부를 되돌려 받는 수법으로 1억 원을 횡령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오페라단원 대부분은 서울대 연세대 성균관대 등 국내 명문 음대를 나온 후 이탈리아 독일 러시아의 유명 음악원에서 성악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등을 전공한 엘리트 음악인이었다. 최 씨도 J오페라단을 운영하며 2010년 제3회 대한민국 오페라 대상을 받았다. 경찰은 “최 씨는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실력은 있지만 취업하지 못한 단원들을 가입시켜 국가보조금 대부분을 착복했다”며 “단원들도 레슨으로 매달 수백만 원을 벌면서 소득 신고가 되지 않은 점을 악용해 범죄에 가담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해 도입된 사회적 기업 제도를 악용해 보조금 3억7000만 원을 부정 수급한 혐의(보조금관리법 위반 등)로 최 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박 씨 등 단원 22명을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수원=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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