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꽃신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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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한 군인이 730여 일간 자신을 기다려준 여자친구에게 꽃신을 신겨주는 모습. 최근 이 영상은 조회수가 75만에 육박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대한민국 공군 페이스북 캡처
전역한 군인이 730여 일간 자신을 기다려준 여자친구에게 꽃신을 신겨주는 모습. 최근 이 영상은 조회수가 75만에 육박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대한민국 공군 페이스북 캡처
‘공군 꽃신’이라는 키워드로 검색되는 한 영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화제입니다. 지난달 30일 ‘대한민국 공군’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이 영상은 사흘이 지난 1일 기준으로 조회수가 75만에 육박했습니다. 군대에 간 남자친구를 기다리는 여성을 가리키는 ‘고무신(곰신)’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친숙합니다. 요새는 여기에 한 단어가 더 추가됐습니다. 우직하게 전역을 기다려준 여자친구에게 보답하려는 남자의 마음을 담은 ‘꽃신’이라는 단어입니다.

영상의 주인공은 이번에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한 조차룡 씨. 그는 ‘스토리 오브 공군’ 영상 제작팀에 사연을 의뢰했습니다. 조 씨는 가족이 모두 미국에 있어 한국 군대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슬픔을 여자친구와 나눴다고 고백합니다. 가족도 지켜주지 못한 빈자리를 2년 가까이 묵묵히 버텨준 여자친구에게 ‘꽃신’으로 감사의 표시를 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영상은 깜짝 이벤트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남자친구를 기다리는 여성의 모습과 남자친구의 설렘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이 말은 잘 하지 않았는데… 사랑해”라고 하며 꽃신의 주인공을 지목했을 때, 여자친구가 흘리는 눈물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꽃신을 신겨준 순간, 서울 신촌 한복판에서 구경하던 시민들은 “참 예쁘다”며 박수를 쳤고 그들은 서로를 꽉 껴안았습니다.

화려한 반지를 끼워주는 모습, 거창한 이벤트로 프러포즈를 하는 모습 등을 담은 영상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운동화 한 켤레를 신겨주는 이 영상이 큰 인기를 끈 이유는 무엇일까요. 730여 일간 서로를 의지한 이 커플의 사랑이 ‘빠른 사랑’에 익숙한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었기 때문일 겁니다.

요즘은 사랑 고백을 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1초도 안 됩니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 그가 자주 지나다니는 길목에서 하염없이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어디야?’라고 메시지를 보낸 뒤 만나면 되니까요. ‘메시지 읽음’ 표시가 떴지만 답이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이런 메시지를 여러 개 보내두고 답이 오는 상대를 만나면 그만입니다. 그를 생각하며 한 땀 한 땀 십자수를 놓거나 종이학을 접는 모습도 사라졌습니다. 기프티콘(모바일로 전하는 선물 쿠폰)으로 커피 교환권을 보내는 게 훨씬 손쉽기 때문입니다.

소개팅이나 미팅을 ‘블라인드 미팅’이라고 부르던 시대도 갔습니다. 소개팅 주선을 받고 ‘누가 나올까?’ 설레며 일주일을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주선자로부터 키, 학벌, 사는 곳, 나이는 물론이고 사진 전송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 주선자라는 말조차 사라져가는군요. 이젠 그 역할을 사람이 아닌 소개팅 앱이 대신 해주니까요. 사진과 인적사항을 올리면 이성인 회원들이 ‘5점 만점에 몇 점’이라고 점수를 매겨줍니다. 3점 이상의 점수를 얻어 ‘품평회’를 통과하면 마음에 드는 상대를 골라 만날 수 있습니다. 단 몇 분이면 소개부터 만남 연결까지 가능합니다.

오늘날 만남의 풍속도가 이렇다보니 730여 일을 동떨어진 곳에서 하염없이 연락만 기다리는 ‘곰신’의 처지는 더 우울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10초 안에 메시지가 몇 개씩 오가던 커플이 갑자기 며칠간 연락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되면 그 공백은 더 크게만 느껴질 것입니다. 군대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는 남자친구와 연락하는 데에는 수일이 걸리지만, 주변엔 몇 초면 대답할 수 있는 이성들이 넘쳐나니 사랑을 지키는 것도 힘들 수밖에 없겠죠.

누군가는 이런 세대를 가리켜 ‘관계 조루증’에 걸렸다고도 표현합니다. 긴 숙성의 시간을 기다리거나, 눈앞에 없는 기간 동안 믿음의 눈으로 서로를 그리는 대신 빨리 만나고, 빨리 헤어지길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쉬운 관계에 회의감을 느끼면 ‘깊은 사랑’ ‘오래 지속되는 사랑’에 목이 마르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별것 아닌 것 같은 이 ‘공군 꽃신’ 영상이 많은 사람에게 박수를 받고 부러움을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 영상을 총감독한 정기완 공군소령(42)은 “장병들의 스토리를 발굴해 영상으로 제작 중인데, 1회인 ‘꽃신’이 큰 인기를 얻었다”며 “빠르고 간편한 사랑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큰 감동이 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김수연 정책사회부 기자 sykim@donga.com
#공군#꽃신#SNS#대한민국 공군#조차룡#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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