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학생 점자교재 마련 ‘깜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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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새학기 개강 보름이나 지났는데…
강의 자료 한두 달 미리 받아야… 음성파일 전환-점자책 준비 가능
일부 교수-강사 저작권 내세워 거부… 전국 1300여명 이중삼중 고통

시각장애를 가진 대학생들은 교재를 일일이 타이핑해 음성파일로 변환하거나 점자정보단말기(사진)를 이용해 공부해야 한다. 동아일보DB
시각장애를 가진 대학생들은 교재를 일일이 타이핑해 음성파일로 변환하거나 점자정보단말기(사진)를 이용해 공부해야 한다. 동아일보DB
“다음 학기 전공과목 교재를 미리 알려주세요. 교재를 타이핑하려면 길게는 석 달 이상 걸려요.”

이달 4일 연세대 사회학과에 다니는 김모 씨(22)는 학과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시각장애를 가진 김 씨는 강의 교재를 모두 타이핑한 뒤 파일을 변환해 음성파일로 듣거나 점자정보단말기(시각장애인용 컴퓨터)를 이용해야 공부할 수 있다. 지난 학기에는 한 과목의 담당교수와 교재가 갑자기 바뀌는 바람에 방학 내내 준비했던 교재가 무용지물이 됐다.

대학마다 개강한 지 2주일이 지났지만 아직 교재를 준비하지 못한 대학생들이 있다. 1300여 명에 이르는 전국의 시각장애 대학생(2014년 한국복지대 조사 결과)들은 개강 한두 달 전부터 새 학기 교재를 준비하지만 개강일에 맞추기엔 역부족이다. 외국에서 개발된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탓에 영어 교재는 스캔만 하면 바로 텍스트파일로 변환되지만 한글은 변환율이 절반밖에 안 돼 일일이 타이핑하는 게 낫기 때문이다. 강의계획서가 발표되자마자 학내 장애지원센터나 인근 복지관에 타이핑을 부탁하지만 짧게는 한 달, 수학 기호나 외국어 발음기호가 포함된 책은 석 달 넘게 걸린다. 그나마도 한 곳에 두세 권밖에 맡길 수 없어 여러 곳에 나눠 부탁해야 한다.

이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저작권 때문에 강의자료를 줄 수 없다”거나 “교재를 미리 알려줄 수 없다”는 일부 교수 및 강사들이다. “교재 파일을 넘겨주는 건 저작권에 저촉된다”는 으름장에 선배가 가진 파일을 물려받지 못하고 같은 책을 다시 타이핑하기도 한다.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는 임모 씨(20)는 “파워포인트(PPT) 자료도 저작권의 일부라 줄 수 없으니 직접 강의를 듣고 타이핑하라”는 교수의 말에 예습을 포기해야 했다. 단국대에 재학 중인 박모 씨(20)는 “학기 중에 공부를 소홀히 할까 봐 교재를 미리 알려줄 수 없다”는 교수의 말에 당황한 적도 있다.

저작권법은 장애인을 위한 경우엔 저작물을 복사·배포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고, 도서관법은 장애인을 위한 비영리 목적이면 도서관이 출판사에 디지털 파일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의무조항이 아닌 탓에 국가기관인 국립장애인도서관마저도 출판사에 요청한 파일의 44%만을 넘겨받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시각장애인총연합회 관계자는 “시각장애 대학생들에게는 저작권 행사를 유예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시각장애대학생회는 다음 달 3일 서울 여의도 한국장애인개발원 이룸센터에서 장애학생 수업권 향상을 위한 공청회를 갖고 학내 지원센터 전문인력 도입 방안을 논의한다.

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시각장애#점자교재#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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