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삼혜원 문 두드린 산타의 손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22일 03시 00분


여수 복지시설 원생 63명, 롯데百 초청으로 광주 나들이
음악회-애니메이션 보고 학용품 세트도 선물 받아

20일 롯데백화점 광주점을 찾은 전남 여수의 삼혜원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흔들며 환하게 웃고 있다. 롯데백화점 광주점 제공
20일 롯데백화점 광주점을 찾은 전남 여수의 삼혜원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흔들며 환하게 웃고 있다. 롯데백화점 광주점 제공
바이올린을 8개월째 배웠지만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 대학생 언니 오빠들 앞에서 연주하는 탓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활을 잡은 손이 떨리다 보니 선율이 고를 수 없었다. 평소 자주 연습했던 곡이라 자신 있었지만 연주는 마음 같지 않았다. 1분이 채 되지 않은 연주였지만 무척이나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김혜원 양(12·초등 5학년)이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 나오는 ‘지금 이 순간’ 연주를 마치자 박수 소리가 홀을 가득 메웠다. 혜원 양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인사한 뒤 바이올린을 대학생 언니 연주자에게 건넸다. 혜원 양은 20일 오후 광주 동구 대인동 롯데백화점 광주점 다목적홀에서 열린 ‘삼혜원 아이들을 위한 자선음악회’에 깜짝 출연했다.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아이가 있으면 손을 들어보라는 말에 나갔다가 창피만 샀어요(웃음). 연주는 엉망이었지만 다음번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혜원 양은 전남 여수의 사회복지시설인 삼혜원에서 중학생 언니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삼혜원은 부모가 이혼하거나 키울 형편이 안 돼 맡겨진 아이들 63명의 보금자리다.

이날 롯데백화점 광주점을 찾은 삼혜원 아이들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나들이여서인지 무척 들떠 있었다. 전세버스를 타고 온 아이들은 백화점 10층 식당가에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배불리 먹었다. 음식은 중식당 ‘만리장성’을 운영하는 김상노 대표(55)가 무료로 대접했다. 김 대표는 “백화점에서 아이들을 초청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음식으로 따뜻한 정을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백화점 9층 영화관에서 애니메이션 ‘쥬로링 동물탐정’을 본 뒤 11층 문화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다목적홀에 들어서자 전남대 관현악반 동아리 회원과 졸업생들이 아이들을 따뜻하게 맞았다. 평소 클래식 음악을 접할 기회가 없었지만 ‘에델바이스’, 엘리스 호손의 ‘희망의 속삭임’, ‘엘 빔보’ 등 밝고 편안한 분위기의 음악이 울려 퍼지자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혜원 양의 ‘깜짝 음악회’에 이어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으로 구성된 현악4중주단이 징글벨을 연주하자 흥에 겨운 아이들이 따라 불렀다. 전남대 관현악반 동아리 선후배들은 이번 음악회를 위해 한 달 전부터 호흡을 맞춰 왔다.

삼혜원 아이들은 여수로 돌아가면서 성탄선물도 받았다. 백화점이 준비한 학용품 세트가 맘에 들었는지 만나는 직원들에게 ‘감사합니다’란 인사를 빼놓지 않았다. 이귀영 삼혜원 영양사(38·여)는 “겨울엔 불러주거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아이들이 방에만 틀어박혀 산다”며 “아이들이 꿈과 희망을 잃지 않도록 마음을 써준 분들이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롯데백화점 광주점이 삼혜원 아이들을 초청한 것은 동아일보 보도가 계기가 됐다. 지난해 5월 20일자 A12면에 게재된 ‘뇌성마비 듬직이가 뒤집기를…삼혜원이 뒤집어졌다’는 기사를 보고 삼혜원 아이들에게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지난해 7월에 이어 두 번째로 초청행사를 마련했다. 류민열 롯데백화점 광주점장은 “어려운 이웃들이 따뜻하게 겨울을 나도록 관심과 사랑으로 보살피는 행사를 자주 열겠다”고 말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삼혜원#산타#바이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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