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손영일]통진당 ‘삭제 발언록’에 감춰진 속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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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윤 “黨해산땐 다시 만들면 돼”… 헌재결정 승복 거부로 비칠수도
黨 “돌출발언” 해명 진정성 의심

손영일·정치부
손영일·정치부
23일 오후 5시경. 서울 강남구 SC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임시 당대회와 ‘당 사수 결의대회’에서 오병윤 원내대표는 “(헌법재판소가 통진당) 해산을 결정하면 당을 다시 만들면 되지요. 그렇지 않습니까”라고 외쳤다. 대회에 참석한 대의원 400여 명은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진정으로 해산해야 할 정당은 새누리당” 등의 구호가 쏟아졌다.

오 원내대표의 발언은 헌재가 통진당을 ‘대한민국 헌법체계와 배치되는 위헌(違憲) 정당’이라고 판단해 해산을 결정하더라도 문제될 것 없다는 얘기다. 해산 결정이 나와도 또 다른 정당을 만들면 된다는 생각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헌재의 해산 결정이 나오면 해산 정당의 명칭은 물론이고 그 강령 또는 기본정책과 동일 혹은 유사한 것으로 창당하지 못한다. 결국 오 원내대표의 발언은 그런 명문 규정에 불복하겠다는 ‘위법 선동’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날 오후 5시 45분경 통진당이 당 공식 홈페이지에 올린 원내대표 발언록에는 해당 발언이 삭제됐다. 통진당 관계자는 “원고 없이 이뤄진 발언일 뿐”이라며 “헌재 결정을 따르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검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헌재 결정에 불리한 영향을 미칠까 봐 ‘마사지’를 한 것 아니냐”라고 해석했다.

이정희 대표는 행사에서 “박근혜 정권의 ‘진보당’ 강제 해산 시도를 반드시 이겨내자”고 강조했다. 김선경 서울시당 청년위원장은 “박근혜 정권의 눈엣가시 같은 통진당의 당원인 것이 영광스럽다”며 “내란음모 무죄! 이석기 의원을 석방시키자! 그것이 되갚아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참석자들은 ‘독재자 박근혜 지금이 유신시대인 줄 아나…미쳤어, 돌았어’란 내용의 개사곡과 율동을 선보이기도 했다. 통진당의 ‘고난’은 박 대통령의 ‘정치 탄압’ 때문이라는 주장들이었다.

이날 행사장엔 태극기가 걸리지 않았다. “애국가는 국가(國歌)가 아니다”란 이석기 의원의 주장처럼 행사장에선 애국가도 불리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당은 대한민국의 법체계, 상식을 따라야 한다는 점을 모르는 국민이 있을까. 헌재는 예상되는 모든 쟁점에 대해 냉철하고 치밀한 법리로 통진당 사태를 정리해야 한다.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통합진보당#삭제 발언록#오병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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