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원전 침수사고 원인 밝혀줄 CCTV 영상 아예 없어

  • 동아일보

한수원 시설관리에 ‘구멍’… “42대중 33대 사고 13일전부터 고장”
‘핵심’ 주제어실-배수펌프실도 포함… 감시망 꺼졌는데 한수원 측은 깜깜
뒤늦게 “1대는 정상작동” 말바꿔… 일각 “고의로 숨기는것 아니냐” 의혹

폭우로 고리원자력발전소 침수사고가 발생한 8월 25일 폐쇄회로(CC)TV에 찍힌 원전 내부 모습. 새누리당 배덕광 의원 제공
폭우로 고리원자력발전소 침수사고가 발생한 8월 25일 폐쇄회로(CC)TV에 찍힌 원전 내부 모습. 새누리당 배덕광 의원 제공
지난달 25일 폭우로 침수사고가 발생한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발전소 2호기 내부 핵심시설의 폐쇄회로(CC)TV 대부분이 사고 당시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365일 가동돼야 할 CCTV들이 사고 발생 13일 전부터 고장이 나 있었는데도 한국수력원자력 측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26일 새누리당 배덕광 의원실과 한수원에 따르면 폭우로 인해 발전소 가동을 중단한 당일 고리원전의 설비점검용 CCTV 42대 가운데 33대의 녹화영상 기록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에는 침수사고가 발생한 순환배수펌프실과 발전소의 ‘두뇌’ 격인 주제어실을 비추는 CCTV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수원 측은 “CCTV 카메라에 연결된 디지털 변환장치가 고장 나 사고 당일 대다수 CCTV에서 녹화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수원은 각 CCTV에 일련번호를 매겨 관리하고 있는데 자체 조사결과 42대의 카메라 중 35∼42번 카메라에 찍힌 영상만 정상적으로 녹화가 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사고 당일 원전 내부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CCTV 녹화영상을 살펴보다가 CCTV들이 고장 난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수원은 CCTV 영상을 확인하지 못한 채 사고원인 조사를 진행했고, 사고가 발생한 지 한 달 만인 이달 24일 원자력안전위원회 승인을 받아 재가동에 들어갔다. 한수원은 사고 당일 집중호우가 내리면서 고리 2호기 순환배수펌프실에 빗물이 들어찼고, 연결 케이블 관로가 설계도면과 달리 밀봉이 안돼 있어 펌프 일부가 자동정지돼 원전 가동이 중단됐다고 설명했다. CCTV 영상이 있었다면 침수 당시 순환배수펌프실의 상황 및 근무자 대응 등에 대한 조사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게다가 고리 2호기 CCTV들은 사고가 발생하기 13일 전인 8월 12일부터 녹화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원전 내부 운영지침은 CCTV 가동 상태를 매일 점검하게 돼 있다. 최소 13일간 고리원전 내부를 들여다보는 감시망이 꺼졌는데도 한수원 측은 침수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날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고장 난 CCTV가 더 오랫동안 방치됐을 수도 있었다.

한수원은 당초 국회가 국정감사를 위해 CCTV 자료 제출을 요구하자 “1∼34번 카메라의 영상이 없다”고 알렸다. 하지만 이후 말을 바꿔 “고장 난 CCTV 카메라 중 33번 카메라는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며 동영상 파일을 최근 제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수원이 사고내용을 은폐하기 위해 존재하는 영상을 고의로 숨긴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배덕광 의원은 “원전가동 상황과 근무자의 적절한 조치, 대응 여부 등을 상시로 볼 수 있는 주요시설이 고장 났는데도 한수원은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원전 정비에 대한 철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한수원#cctv#시설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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