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푸른 숲이 잿빛으로… 구상나무 절반 말라죽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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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재앙 덮친 한라산 가보니

한라산 구상나무 숲이 멸종 위기로 치닫고 있다. 이상기후 등으로 말라죽은 구상나무 고사목을 등산로 곳곳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한라산 구상나무 숲이 멸종 위기로 치닫고 있다. 이상기후 등으로 말라죽은 구상나무 고사목을 등산로 곳곳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구상나무가 대규모 군락을 이룬 지역은 세계적으로 제주도가 유일하다. 나무의 학명(Abies Koreana)에도 ‘코리아’가 들어간다. 구상나무는 한라산 해발 1300m 이상 고지대 52군데에 집단 분포돼 있다. 구상나무는 1920년 미국 하버드대 부설 아널드 수목원 소속 아시아담당 식물학자인 어니스트 H 윌슨이 신종으로 학계에 보고하면서 알려졌다. 제주에서 미국과 유럽 등지로 건너간 구상나무는 종자 번식을 거쳐 서양인들의 크리스마스트리로 애용되고 있다. 구상나무는 피라미드 형태로 곧고 단정한 수형에 늘 푸른 모습으로, 죽어서도 형상을 간직해 ‘살아서 1000년, 죽어서 1000년’이라는 말을 듣는다.

제주의 대표적 특산수종인 구상나무 숲이 시름시름 앓다 못해 멸종 위기를 맞고 있다. 세계자연보존연맹(IUCN)도 지난해 구상나무를 멸종 위기 등급으로 상향 조정했다.

○ 멸종 위기 구상나무

14일부터 17일까지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과 3개 등산 코스의 구상나무 숲을 둘러본 결과 ‘대재앙’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만큼 상황이 심각했다. 한라산 정상 북벽 부근(해발 1850m)에서 왕관릉 방향으로 내려다보면 늘 푸른 나무인 구상나무 숲이 넓게 펼쳐져 있다. 예년 같으면 푸른 빛깔로 가득했을 숲 지대에 잿빛이 짙게 드리워 있었다. 말라죽은 구상나무가 폭넓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정상 부근뿐 아니라 고지대에서 내려다본 구상나무 숲은 병색이 완연했다. 성판악 등산 코스의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정상 사이, 영실 등산 코스의 영실계곡 주변 숲도 상황은 비슷했다. 등산객들은 영문을 모른 채 말라죽은 구상나무 사이를 오갔다. 류모 씨(50)는 “푸른 구상나무와 말라죽은 구상나무가 서로 어울리면서 특색 있는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그런데 말라죽은 구상나무는 수명이 다한 건가”라고 묻기도 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명을 다한 구상나무는 굵은 가지가 다양한 각도로 뻗으며 매끈하다. 반면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말라죽은 구상나무는 잔가지가 앙상하다. 바람을 이기지 못해 뿌리째 뽑혀 드러누운 나무도 많다.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 내부 구상나무 역시 회색으로 말라죽고 있다. 집단으로 고사한 모습도 보였다. 해발 1700m 윗세오름 대피소 주변 구상나무는 푸른 잎이 모두 사라졌다. 앙상한 가지는 큰부리까마귀의 쉼터가 됐다.

○ 보존, 복원 해법 필요

제주도는 지난해 10월부터 올 4월까지 구상나무가 분포하는 한라산 10개 지역을 대상으로 표본조사를 실시한 결과, 구상나무 가운데 절반이 말라죽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라산 전체 구상나무 분포 면적 795ha 가운데 45.9%에서 고사목이 확인됐다. 구상나무는 1990년대까지 노령화, 종간 경쟁 등으로 자연적인 고사가 있었으나 2000년대부터는 기후변화에 따른 적설량 감소와 차가운 바람으로 대량 고사하기 시작했다. 태풍과 집중강우도 나무의 뿌리를 흔들어 성장 기반을 악화시킨 요인으로 지적됐다. 구상나무 멸종위기가 현실로 나타남에 따라 제주도, 환경부, 산림청 등 국공립연구기관이 참여하는 관계기관 협력체계를 구축해 구상나무의 보존 및 복원 전략 수립을 위한 연구를 추진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만족할 만한 해법은 나오지 않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김찬수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장은 “구상나무는 기후변화에 민감한 종으로 국제적 관심을 받고 있다. 구상나무 인공증식 기술은 이미 개발돼 내년부터 대량 증식 사업을 벌일 예정이다. 그러나 한라산 천연보호구역에서의 구상나무 복원 사업은 문화재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구상나무#한라산#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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