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아파트 옆 골목길에 철문… “다른 단지 주민은 돌아가시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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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박한 이웃 사촌… 학교 공원 지하철역 연결 지름길
“외지인 소음 쓰레기에 골머리”… 땅 소유한 아파트측서 덜컥 막아
구청측 “사유지… 제재 방법 없어”

서울 강남구 역삼동 골목길에 철문(원 안)과 잠금장치가 설치된 지 일주일이 지난 14일 오후 한 초등학생이 집으로 가기 위해 아슬아슬하게 철조망을 넘고 있다. 다른 아파트 주민들이 철조망을 뚫어 작은 구멍을 만들었지만 해당 아파트 측은 이내 메우고 경고 문구를 붙였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서울 강남구 역삼동 골목길에 철문(원 안)과 잠금장치가 설치된 지 일주일이 지난 14일 오후 한 초등학생이 집으로 가기 위해 아슬아슬하게 철조망을 넘고 있다. 다른 아파트 주민들이 철조망을 뚫어 작은 구멍을 만들었지만 해당 아파트 측은 이내 메우고 경고 문구를 붙였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문을 부숴버리자는 얘기까지 나와요. 이런 법이 어딨습니까!”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개나리 4차 아파트로 이어지는 골목길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갑자기 들어선 ‘철제문’을 둘러싸고 주민들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14일 오후 찾은 이곳에서는 하굣길 초등학생들이 굳게 잠긴 철문을 옆에 둔 채 철조망을 기어오르거나 담벼락을 넘는 등 위험천만한 방식으로 골목길을 지나다니고 있었다.

○ “지독한 이기주의” vs “참다못해 취한 조치”


문제의 철문이 생긴 건 이달 7일. 이 골목길은 수십 년간 인근 학교와 공원, 지하철 2호선 선릉역으로 연결되는 지름길 역할을 해왔다. 그러던 중 이 땅을 소유한 아파트 측이 “외지인이 지나다녀 골치 아픈 문제가 발생한다”며 출입카드가 있는 주민만 오갈 수 있도록 철문을 설치한 것이다. 이 때문에 ‘다른 길로 돌아가라’는 아파트 측과 ‘문을 열라’는 타 아파트 주민 간 말싸움이 벌어지거나, 감정이 격해진 일부 주민은 철문을 일부 부수기까지 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은 “다른 아파트, 지역 주민이 지나다니면서 쓰레기 범죄 소음 등의 문제가 난무해 주민들이 골머리를 앓다 취한 조치”라며 “그 골목길은 아파트 사유지이기 때문에 문을 설치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충분히 계획을 알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다른 아파트 주민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이모 씨(35·여)는 “아무리 강남 인심이 팍팍하다지만 골목길에 카드 잠금장치를 설치하는 경우는 처음 봤다”며 “항의하고 문을 부수려고 하니 오늘은 아예 쇠사슬까지 걸어버렸다”며 혀를 찼다. 또 다른 주민 홍모 씨(43)는 “궁여지책으로 철조망에 개구멍을 뚫고 지나다녔는데 이마저도 막아놓았고 또 훼손하면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고 말했다.

○ “아파트 주민 아니면 돌아서 가세요”

실제 강남구청에는 타 아파트 주민의 출입을 막는 일부 아파트들의 처사를 둘러싼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같은 날 찾아간 대치동의 한 아파트에서는 인근 고등학교의 하교시간이 되자 ‘보안’이라 쓰인 검은 재킷을 입은 경비 직원 2명이 경광봉을 들고 출입구를 지키고 섰다. 이들은 “다른 아파트 주민은 단지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 “다른 데 사는 학생들은 돌아가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애초 이 아파트 역시 학교와 맞닿는 곳에 철문을 설치하려 했지만 항의가 많아 무산됐고, 그 대신 문 앞에서 출입을 통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파트 주민들도 사정은 있다. 아파트 거주자라고 밝힌 한 여성은 “청소년들이 단지 내에서 흡연하거나 떠드는 일이 많아 출입을 제한하는 것뿐이며 주민으로서 누릴 정당한 권리”라고 말했다.

강남구는 역삼동과 대치동 아파트 출입제한에 대한 민원이 끊이지 않자 현장 조사까지 나섰지만 주민들 간 의견 대립이 너무 팽팽해 접점을 찾지 못한 상황이다. 강남구 관계자는 “해당 부지가 모두 아파트 사유지여서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사유지#이웃 사촌#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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