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죽고 몇 달이 지났는데도 진실을 까맣게 몰랐어요. 나 자신이 그저 한심하고 바보스럽습니다.”
지난해 8월 경북 칠곡군에서 계모에게 학대당해 숨진 A 양(당시 8세)의 생모 이모 씨(36)는 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친딸처럼 돌봐주겠다고 약속해 그 말만 철석같이 믿었다”며 울먹였다.
이 씨에게 계모 임모 씨(35)는 한없이 고마운 사람이었다. 2007년 남편과 이혼하고 애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궁금했던 차에 2012년 5월경 임 씨가 먼저 연락을 해 와 아이들을 잘 돌보겠다고 약속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안부를 알려줬기 때문. 그는 “막내딸 ○○이 어려서 엄마가 그리워서인지 임 씨를 잘 따른다고 했다. 애들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 씨는 곧 돌변했다. 같은 해 8월경 “○○이의 언니(12)가 도둑질을 하고 거짓말을 자주 해 키우기 힘들다”는 전화가 왔다. 이어 한 달에 한두 번씩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연락을 하면서 돈을 요구했다. 소풍을 보내야 한다, 컴퓨터를 사줘야 한다, 부모 이혼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아 심리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등 이유도 많았다. 고마운 사람에게 못해줄 것이 없었다. 지난해 7월까지 700여만 원을 보냈다. 이 씨는 “나중에 큰딸에게 들었는데 한 푼도 애들을 위해 쓰지 않은 것 같다. 처음 받은 좋은 인상을 믿었는데 내가 너무 어리석었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씨는 막내딸이 숨진 날도 잊을 수가 없다. 그는 “지난해 8월 16일 전남편에게 전화가 와 ‘아이가 죽었다. 배가 아파서 병원에 왔는데 치료 중에 사망했다’고 했다. 평소에 식탐이 많아 배탈이 자주 났다고 해서 그게 문제가 됐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장례식장에서 만난 임 씨가 매달려 울면서 ‘미안하다. 내가 잘 돌봤어야 했다’고 말했다. 나중에 모두 ‘연기’였다고 생각하니 화가 나 견딜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전남편은 아이의 부검 소식을 알리면서 사람이 갑자기 죽으면 다 그렇게 한다며 안심시켰다. 그는 “모든 게 다 거짓이었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며 흐느꼈다.
그가 진실을 알게 된 것은 올해 1월. 아이들의 고모가 연락을 해 사건의 전말을 알려줬다. 이 씨는 “전남편과 임 씨, 그의 가족 말을 믿고 (재판부에 임 씨를 선처해 달라고) 탄원서를 써준 일이 가슴에 시커먼 멍이 됐다. 그들이 모든 사실을 알고도 나에게 모른 척하고 아닌 척했던 일이 억울해 밤에 잠을 설칠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큰딸이 비공개 증인신문에서 ‘임 씨가 동생이 엎드려 있는데 발로 밟고 일으켜 주먹으로 배를 심하게 때렸다’는 말을 했다. 거실에서 TV를 보는데 시끄럽게 한다는 이유에서였다는 말을 듣고 울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나도 할 수만 있다면 임 씨와 전남편을 죽지 않을 만큼 때리고 싶다. 그들을 살인죄로 엄히 다스려 하늘에 있는 ○○이의 원혼을 달래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 씨는 “그래야 남은 큰딸이 이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느냐…”며 말을 잇지 못했다.
A 양의 학교 담임교사였던 박모 씨(36)는 이날 기자와 만나 “맑고 순수한 아이가 한순간에 망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허무하다”고 말했다. 그는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A 양의 1, 2학년 담임을 맡아 학대 사실을 아동복지센터에 처음 알리고 보호 관찰과 격리 조치를 주장하는 등 이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박 씨는 “하지만 아동복지센터는 물증이 없고 부모가 갑자기 사라지면 가정이 무너질 수 있다는 이유로 제대로 조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센터 측이 심리상담을 한 결과 A 양이 이중성격이란 진단이 나와 전적으로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며 “치료를 하면서 계속 지켜보자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폭행은 멈추지 않았다. 박 씨는 “계모에게 물으면 ‘손을 잡아주지 않아 넘어져 다쳤다, 계단에서 굴러서 입은 상처다’라고 거짓말을 했다. 너무 맞아서 직접 병원에 데려간 일도 한두 번이 아니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그때마다 센터는 신고만 받고 안심시켰다. 가해자인 부모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아동학대는 일반 사건과 다른데 왜 관심을 갖고 지켜주지 않았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당시 아동복지센터가 안일하게 대처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도 2012년 10월경 A 양의 언니, 지난해 7월경 외삼촌의 신고를 받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경찰은 임 씨 등을 사건 발생 후 두 달가량 지난 지난해 10월 구속할 때까지 부모와 큰딸을 격리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피하기 힘들게 됐다. 경찰 관계자는 “부검 결과가 나오기까지 한 달 이상 걸렸고 아동센터의 상담 기록을 확인해 보강 수사를 하느라 구속이 늦어졌다. A 양의 언니가 범행 가담 사실을 일관되게 진술해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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