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동서남북]‘민주당’ 숨기는 김부겸의 출마선언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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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김부겸 예비후보의 출마선언문을 자세히 읽어봤다. 출마설이 나오면서부터 대구에서는 그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전 민주당 최고위원 출신인 김 후보가 고민을 거듭하며 작성했을 출마선언문을 보면서 대구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전략보다는 ‘정치적 계산’이 많이 느껴졌다.

선언문에는 ‘민주당’이라는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대구의 변화와 대한민국의 상생을 향한 행진’이라는 제목의 선언문에서 정당을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은 ‘제가 속한 당의 인기가 여전히 낮고’라는 단 한 부분이다. 여기에도 ‘민주당’ 대신 그냥 ‘당’이라고만 했다.

이에 비해 ‘김부겸이 대구시장이 되면’처럼 자신의 이름은 15회 언급했다. 대구에는 ‘김부겸은 괜찮지만 민주당은 좀…’ 같은 분위기가 있으므로 정당은 숨기고 개인을 내세워야 유리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태도는 평소 김 후보가 강조하는 상생 대화 협상 같은 가치와도, 진솔한 그의 이미지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김 후보는 2012년 대구 수성(갑)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을 때 ‘정당 정치’를 강조했다. “수성구에서부터 민주통합당 바람을 일으켜 양당경쟁 정치를 하겠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그가 자신의 정치인생을 담아 2011년 펴낸 책의 제목도 ‘나는 민주당이다’이다. “민주당이 대구에 무심했다. 발목도 잡았다. 이제 김부겸이 앞장서 새로운 민주당을 대구에 보여주겠다”고 했다면 오히려 호소력이 있지 않았을까.

선언문에 가득한 정치적 구호 수준의 표현도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거칠고 자극적인 표현이나 위기의식을 강조하면서 유권자들을 솔깃하게 만들려는 언행은 선거에서 흔하다. 그러나 3선 국회의원(경기 군포)을 지내는 등 거물급 정치인으로 평가되는 김 후보의 진정한 ‘내공’이 무엇인지 고개가 갸웃해진다.

‘대구의 국회의원, 정당, 고위행정관료가 대구를 낙후시킨 장본인이다’ ‘또 여당 시장이 되면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대구 현안을 뭉갤 것이다’ ‘야당 시장과 대구 출신 대통령이 손을 맞잡으면 세상에 안 될 일이 없다’ 같은 표현이 그런 것이다. 그는 대구를 바라보는 이 같은 자신의 관점을 귀족의 부패로 멸망한 로마에 비유했다. 지나치고 부적절한 비유이다.

김 후보는 또 “내가 시장이 되면 책임지고 민주화 세력을 설득해 산업화 세력의 상징인 대구가 국민통합의 성지로 재탄생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박근혜 대통령은 헌정 사상 최초의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라고 했다. “두 세력이 아직 서로 적대시하고 있어 한국 정치가 살벌하다”고 진단하면서 한 말이다. 대구시장 선거를 위한 이슈로 적절한지, 대구시민이 얼마나 공감할지 의문스럽다.

앞으로 김 후보가 대구 발전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비전과 공약을 내놓을지 모르겠지만 출마선언문에 담긴 그의 생각과 판단을 보면 “과연 다르구나” 하는 기대나 설렘을 갖기 어렵다. 거물급 정치인이라는 세간의 이미지가 알맹이인지 껍데기인지 냉정하고 철저한 검증이 필요해 보인다.

이권효·대구경북본부장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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