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책 없어지는 광주?… 그래도 책 읽는 광주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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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벤치 in 광주’ 프로젝트… 책 훔쳐가고 보관함 훼손 비일비재
벤치지기들 “시민의식 아쉽지만 지금은 성장통… 책 계속 채울 것”

신광조 광주시 상수도사업본부장은 27일 오후 서구 치평동 BYC 건물을 지나다 깜짝 놀랐다. 한 달 전 건물 옆 벤치에 놓아둔 ‘지식배달통’과 그 안에 들어있던 책 5권이 모두 불에 탄 채 널브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지식배달통’은 ‘책 읽는 벤치 in 광주’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신 본부장이 배달용 철가방을 개조해 만든 책 보관함이다.

‘책 읽는 벤치 in 광주’ 프로젝트는 재미있게 읽은 책을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벤치에 놓아두는 독서운동으로, 지난달 7일부터 전국에서 처음으로 광주에서 시작됐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벤치지기’로 참여한 신 본부장은 시청 앞, 운천저수지, 풍암호수 등 7곳의 벤치를 ‘작은 도서관’으로 꾸몄다. ‘아워 셰어링 벤치(OUR SHARING BENCH)’라는 스티커를 벤치에 붙이고 철가방 뚜껑에 ‘책을 본 다음에 꼭 제자리에 돌려주세요’라고 적었다. 그러고 안에 150여 권의 책을 넣어 두었다. 그런데 한 달도 채 안돼 철가방 1개가 불타고 1개는 손잡이가 심하게 찌그러졌다. 넣어둔 책 수십 권도 사라졌다.

신 본부장은 “독서운동을 확산시키고 책으로 공유하는 광주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참여했는데 실종된 시민의식을 보고 마음이 착잡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무엇이 부족한지를 알고 문화 공유의 소중함을 깨닫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계속 책을 채워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28일 오후 광주 서구 치평동 벤치에 놓여진 ‘지식배달통’과 안에 담겨 있던 책이 불에 탄 채 널브러져 있다. 신광조 씨 제공
28일 오후 광주 서구 치평동 벤치에 놓여진 ‘지식배달통’과 안에 담겨 있던 책이 불에 탄 채 널브러져 있다. 신광조 씨 제공
책을 통해 다른 사람과 공감하면서 휴식공간인 벤치를 모두가 즐기고 나누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운동이 일부 시민의 그릇된 행동으로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한 달여 만에 100여 명이 벤치지기로 참여하고 도심 곳곳의 벤치 80여 곳이 ‘미니 공공 도서관’으로 탈바꿈했지만 누군가 책을 가져가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상무지구 ‘책 읽는 벤치’ 3곳에서만 벌써 책 30여 권이 사려졌다. ‘책 읽는 벤치’가 80여 곳인 것을 감안하면 현재까지 없어진 책은 100권이 넘는다.

‘책 읽는 벤치 in 광주’를 주도한 탁아림 씨(25·책 읽는 고릴라 코디네이터·여)는 지금 프로젝트가 ‘성장통’을 겪는 중이라고 했다. 탁 씨는 “벤치지기가 늘고 책 기부가 잇따르는 등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는 가운데 이런 일이 발생해 아쉽다”며 “사라졌던 책들이 언젠가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컬쳐네트워크와 책 읽는 고릴라, 광주재능기부센터, 아름다운가게 헌책방 용봉점, 좋은세상만들기, 광주전남대학생 소셜네트워크 등이 참여한 이 프로젝트는 올 초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뤼일방크(Ruilbank)에서 착안했다. ‘뤼일’은 네덜란드어로 ‘교환’이라는 뜻이다. 다 읽은 신문을 누군가가 다시 읽도록 남겨두고 가는 지하철 관습을 문화교류로 연결한 프로젝트다. 대형 빨간 클립을 이용해 공원벤치에 책이나 잡지 등을 꽂아두고 시민 누구나 읽고 교환해 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시민의식#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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