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명예 다 뺏기고 세상과 등진 시절… 꽃-나무 키우며 사람 사는 이치 배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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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정원문화대상 대상 장기영씨

장기영 씨는 정원을 가꾸며 삶의 지혜를 배웠다고 했다. 그는 “한 줄기에서 꽃이 5, 6개가 나오지만 1개만 남기고 잘라버린다. 그 한 송이가 꽃의 아름다움을 최고로 보여준다. 욕심을 내면 꽃을 망치듯 사람을 망칠 수 있다”고 말했다. 양평=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장기영 씨는 정원을 가꾸며 삶의 지혜를 배웠다고 했다. 그는 “한 줄기에서 꽃이 5, 6개가 나오지만 1개만 남기고 잘라버린다. 그 한 송이가 꽃의 아름다움을 최고로 보여준다. 욕심을 내면 꽃을 망치듯 사람을 망칠 수 있다”고 말했다. 양평=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중미산과 북한강을 끼고 있어 산자수명한 경기 양평군 서종면 수입리에 자리 잡은 장기영 씨(71)의 집은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시켰다. 지난주 그의 집 정원에 들어서자 구불구불 멋지게 휘어진 금강송이 먼저 인사하듯 반겨 줬고 활짝 핀 인동초의 그윽한 향기가 은은하게 감싸 안는 듯했다. 4500m² 넓이의 정원에는 토종 수목 150여 종과 야생화 등 화초류 70여 종이 한창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본채 앞의 홍송과 능수송, 100년이 넘은 분재 단풍나무는 좀처럼 보기 힘든 수종. 잔디밭 주위로는 섬초롱과 채송화 한련화 금낭화 달맞이꽃 노루오줌 토종장미 벌개미취 구절초 등 수많은 꽃이 노랗고 빨갛고 하얗게 피고 지고 있거나 봉오리를 맺고 있었다. 봄부터 늦가을까지 하루도 꽃이 지는 날이 없다.

중미산에서 흘러나와 북한강으로 흘러드는 벽계구곡이 정원을 감싸고 건너편 산 밑으로 휘돌아 나간다. 아랫마을 개울에는 물놀이 인파가 북적였지만 이쪽은 자연 휴식년제가 적용돼 인적이 뚝 끊겼다. 너른 잔디밭과 정자, 분수, 석탑이 더해져 운치를 자아내는 정원에는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만이 가득했다.

장 씨의 정원은 지난달 경기농림진흥재단이 선정한 제3회 경기정원문화대상에서 높은 점수로 대상을 차지했다. 장 씨는 “이 정원에서 젊은 날 입었던 상처를 달랬고 삶의 지혜도 깨쳤다”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장 씨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건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종로의 유명 대입단과학원에서 화학을 가르쳤다. 학생이 많을 때는 하루에 2000명을 웃도는 스타 강사였다. 1988년에는 서울 강남구 선릉역 근처에 한국학원을 차리고 경기 고양시 일산과 성남시 분당에 분원을 내고 승승장구했다. 서울시 강남구 교육위원이 돼 서울시교육위 부의장까지 지냈다. 그러나 호사다마였다. 교육감 선거 때 특정 후보를 지원했다. 선거 후 일주일 만에 탈세 혐의로 조사받아 수감되고 세금 추징을 당했다. 당시 심신이 피폐할 때 지인을 찾았다가 지금의 집터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는 모든 게 싫었어요. 이곳에 처박혀 집 짓고 정원 가꾸는 일로 세월을 견뎠습니다.”

정원 가꾸기에 재미를 붙인 장 씨는 제대로 정원을 가꿔 보려고 세계적으로 이름난 캐나다의 부처드가든을 세 차례나 방문했다. 최고의 정원은 주변 자연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전국을 돌며 토종 수목과 화초를 구해 심었다. 지금 정원엔 토종이 90% 이상이다. 5년 정도 열정을 쏟아 부으니 얼추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그는 “나무나 꽃이 병에 걸리거나 시들었을 때 ‘너는 괜찮을 거야’ 다독이며 칭찬해주면 다음 해 봄에 튼튼한 모습으로 보답해준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도 치유의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장 씨는 강남과 분당 학원은 처분했고 일산 학원만 운영하고 있다. 출근 전 매일 오전 5시면 일어나 부인 황선숙 씨(60)와 함께 2시간가량 정원을 돌며 대화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장 씨는 “나무와 꽃을 가꾸면서 과욕이 화를 부르고, 꾸준한 노력이 결실을 보고, 말없이 넓고 깊어야 감동을 불러온다는 이치를 배웠다”고 말했다.

양평=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장기영#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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