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남식 부산시장(왼쪽)은 16일 고미술품 50여 점을 부산시립박물관에 기증한 김향 씨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부산시 제공
“무슨 특별한 계기나 큰 뜻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과 문화적 가치나 아름다움을 나누기 위해 기증을 결심했습니다.”
50대 주부가 20여 년간 어렵게 수집한 서예, 그림 등 고미술품 50점을 최근 부산시립박물관에 기증해 화제다. 주인공은 부산 기장군에 사는 김향 씨(53·여). 전문가들은 김 씨의 기증 미술품이 시가 2억 원은 훨씬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업주부인 김 씨는 “부모님이 고미술품을 좋아하셔서 자연스럽게 고미술품에 관심이 많았다”며 “이번 결정에는 수집 과정에서 알게 된 신옥진 씨(부산공간화랑 대표)의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신 씨는 부산시립박물관, 밀양시립박물관 등에 많은 유물을 기증한 부산의 대표적인 문화계 인사. 신 씨는 평소 고미술품에 관심이 많은 김 씨에게 “예술품은 혼자 보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함께 즐기고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낫다”는 취지로 자주 조언했다.
기증 서예 자료는 원교 이광사, 표암 강세황, 추사 김정희, 자하 신위, 의친왕 이강 등 조선 후기에서 근대까지 서예사에 족적을 남긴 명필들의 작품이 포함돼 있다. 특히 시, 서예, 그림이 뛰어나 삼절(三絶)로 불린 강세황의 ‘화훼첩발문(花卉帖跋文)’과 김정희가 지인에게 보낸 담백한 서체 편지글인 ‘간찰(簡札)’, 동국진체의 개척자인 이광사의 ‘해서첩(楷書帖)’ 등은 가치가 뛰어난 작품이다.
김향 씨가 최근 부산시립박물관에 기증한 소치허련의 ‘산수화’. 부산시립박물관 제공그림으로는 조선 후기 남종문인화의 맥을 지키며 현대 호남화단 형성에 기여한 소치 허련의 ‘산수화(山水畵)’와 ‘묵란도(墨蘭圖)’, 이광사의 아들로 서예는 물론이고 그림에도 능했던 신재 이영익의 ‘초충도(草蟲圖)’가 포함돼 있다. 대원군 이하응의 측근인 소호 김응원의 ‘묵란도’, 일제강점기 고희동과 함께 서화협회를 이끌었던 관재 이도영의 ‘산수화’와 ‘고사인물도’ 등도 눈길을 끈다. 포도 그림으로 유명한 낭곡 최석환, 조선 후기 풍속화가 임당 백은배, 기러기 그림으로 알려진 석연 양기훈, 하산 유치봉, 송은 이병직, 운보 김기창 등 근현대 화단 주요 작가들의 작품도 많다. 이 중 운보 작품은 신윤복의 풍속화첩인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 중 ‘야금모행(夜禁冒行)’을 자신만의 필치로 모사한 것으로 일반인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수작이다.
민속품으로는 절편에 무늬를 새기는 나무떡살과 백자떡살, 전통 다(茶) 식판, 목어(木魚), 상여 앞 장식품인 꼭두 등이 있다. 일제강점기 관광 상품으로 유통된 칠기 소반과 나무떡살은 관련 학계의 연구 사료로 주목되는 자료다. 또 명나라 연호인 천계명(1622년)을 가진 보기 드문 마패도 있다.
부산시는 김 씨의 뜻을 기리고 기증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16일 감사패를 전달했다. 부산박물관은 기증전시실에 코너를 마련해 김 씨의 기증 유물을 전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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