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뉴욕 브롱크스의 랭귀지&이노베이션 고등학교의 한국어 수업에서 한 학생이 영어 발음기호와 함께 쓴 한글 솜씨를 뽐내고 있다. ‘기자님 안녕하세요’는 또박또박 적었지만 ‘어서 오세요’를 ‘언서오세요’라고 썼다.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싸이의 ‘강남스타일’로 인기가 더욱 높아진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과 한국 드라마 등 한류(韓流) 덕분에 한국어를 배우려는 미국인이 늘고 있다. 삼성 LG 현대차 등 한국의 글로벌 기업에 취업하려는 젊은층의 수요도 한국어 배우기 열풍에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로스앤젤레스지사는 15일 영어권 한류 전문 사이트인 숨피닷컴(www.soompi.com)이 미국 회원 156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조사 대상자의 41%가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를 즐기면서 한국어를 배우게 되었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이달 초 뉴욕 브롱크스에 있는 랭귀지&이노베이션 고등학교의 한국어 수업 시간에 만난 학생들도 케이팝 때문에 한국어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한국어 수업을 도입한 이 학교에는 한국계 학생이 한 명도 없지만 한국어 수업에 미 현지 학생 14명이 참가하고 있다. 서니 윈 군(15)은 ‘왜 한국어를 배울 생각을 했느냐’는 질문에 대뜸 “강남스타일을 아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 인기가 높은데 그들에게 노래를 이해하려면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좋다고 권유한다”고 말했다. 같이 수업을 듣는 스테이시 양은 “케이팝의 가사를 어느 정도 이해한 뒤로는 ‘꽃보다 남자’ ‘시티헌터’ 등 한국 드라마를 보기 위해 한국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한류 열풍 등으로 미국에서 한국어 강좌를 정규 과목으로 개설하는 초중고교도 빠르게 늘고 있다. 2006년 미 뉴욕, 뉴저지 주의 중고교에 처음으로 한국어 수업이 개설된 이후 올해 10월 말 현재 한국어를 정식 과목으로 채택한 학교가 16곳으로 늘어났다. 미 전역에서는 2009년 57개교에서 지난해 81개교로 2년 만에 43%나 증가했다.
뉴욕 퀸스 플러싱 동서국제고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이정혜 씨는 “4, 5년 전에 비해 한국어 수요가 놀랄 정도로 늘었다. 한국 대중문화의 영향이 가장 크지만 한국의 위상이 올라가고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것들이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학교에서 한국어 수업을 듣고 있는 하사니 아널드 군(16)은 “미국 학생들은 보통 1, 2개의 외국어를 배워야 한다. 한국어는 독특한 데다 배워두면 삼성과 현대와 같은 한국 기업에서 일할 기회도 넓어질 것이라는 점에서 끌린다”며 “대학에 가서도 한국어를 계속 공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류는 ‘한국어 사랑’뿐만 아니라 미국인들에게 한국 제품에 대한 선호도와 한국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도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관광공사 조사에서 대상자의 16%가 ‘한류가 한국 제품을 구입하는 계기가 됐다’고 답변했고 27%는 ‘한국 대중문화를 접한 이후 한국이 꼭 가보고 싶은 나라가 됐다’고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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