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추억 ING]“중국산에 치여 제값 못받아도 오래 제몫하는 연장 포기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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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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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천호동서 3대째 대장간 운영 강영기-단호 부자

7일 서울 강동구 천호동 동명대장간에서 아버지 강영기 씨(왼쪽)와 아들 단호 씨가 3000도가 넘는 화덕 옆에서 달궈진 쇳덩이를 힘차게 내리치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7일 서울 강동구 천호동 동명대장간에서 아버지 강영기 씨(왼쪽)와 아들 단호 씨가 3000도가 넘는 화덕 옆에서 달궈진 쇳덩이를 힘차게 내리치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아버지가 벌겋게 달궈진 쇳덩이를 화덕에서 꺼내 모룻돌(대장간에서 받침용으로 쓰는 돌)에 올려놓자 아들은 망치로 두들기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망치질 소리에 귀가 먹먹해졌다. 물에 들어가 몸을 식힌 쇳덩이는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날을 드러냈다. 바깥 날씨는 가을답게 화창하고 선선했지만 이곳만큼은 3000도가 넘는 화덕에서 내뿜는 열기로 한여름 같았다. 화덕 주변에 검은 때가 낀 선풍기 3대가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열기를 식히기엔 역부족이었다.

가장자리가 무뎌진 노루발못뽑이(속칭 빠루)는 이렇게 강영기 씨(61)의 대장간에서 오랜 담금질 끝에 반질반질해져 공사현장으로 돌아간다. 7일 오전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 있는 강 씨의 대장간. 이날 ‘2대 대장장이’ 강 씨는 10m²(약 3.3평) 남짓한 작업장에서 ‘3대 대장장이’ 아들 단호 씨(32)와 함께 30여 자루의 노루발못뽑이와 20개가 넘는 쇠정을 손질했다. 노루발못뽑이 1개는 4000원, 쇠정은 2000∼3000원에 수리해준다.

강 씨는 6·25전쟁 당시 강원도 철원에서 이곳으로 가족과 함께 피란 왔다. 10년 전 세상을 떠난 강 씨의 아버지는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아버지 곁에서 보고 배운 덕에 강 씨는 열세 살 때부터 대장장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50년 동안 대장장이로 지내며 도끼부터 망치, 낫, 칼, 호미 등 안 만들어본 쇠붙이가 없다. 지금도 각종 연장을 만들어 팔고 있지만 값싼 중국산에 치여 제값을 받지 못한다. 그래도 강동 송파 강남 3개 구를 통틀어 대장간이 여기 한 곳뿐이라 손님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6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강 씨의 대장간은 한때 문 닫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빚보증을 잘못 써 통째로 가게를 날릴 뻔했지만 다행히 이어진 건설 호황기에 일감이 늘어 겨우 위기를 넘겼다. 아버지에게서 대장장이 일을 물려받은 자신과 달리 아들 단호 씨는 다른 일을 시켜보고 싶어 대학을 보내 건축회사에 취직시켰다. 그러다 강 씨가 건강이 안 좋아 쓰러지자 단호 씨는 1년 만에 회사를 박차고 나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장장이가 됐다. 벌써 6년째다.

3대가 이어온 가업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딸을 낳고 싶긴 한데 아들 낳으면 여기 이 화덕에 쇠 넣는 법부터 가르쳐야죠.” 자신의 아들에게도 가업을 물려주고 싶다는 단호 씨의 말을 듣던 강 씨는 손사래를 치면서도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강 씨는 “마트에서 파는 그럴싸한 연장보다 이곳을 거쳐 간 투박한 연장이 오래가기 마련”이라며 “60년 이어온 가업인데 아들 덕분에 100년을 채우게 생겼다”고 말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천호동#대장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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