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밟힌 ‘코리안드림’…어느 동포의 기구한 사연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7일 16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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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양심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힘없고 순진한 조선족 동포라고 이렇게 막 대해도 되는 것인가요?"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에 와 열심히 일해 돈을 벌었지만 지금은 가진 돈을 모두 떼이고 하반신마비로 치료비도 없이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조선족 동포 박분선(58·여) 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연합뉴스가 소개했다.

절망의 늪에서 억울한 심정을 삭이며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는 박 씨는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같은 동포요 민족이라는 말이 이처럼 허무하고도 깊은 상처로 남게 될 줄은 몰랐다"면서 힘겹게 입을 뗐다.

중국 지린성 옌지에서 살던 그가 한국에 처음 온 것은 지난 2000년 6월. 충청북도 증평에서 1년, 경기도 고양에서 4년간 식당일을 할 때까지만 해도 박 씨의 코리안 드림은 유효했다. 고향의 자식들과 오순도순 살 날을 그리며 한 푼 두 푼 돈을 모았다.

2007년 6월, 좀 더 많은 돈을 받고 일하려 충북 청주의 큰 식당으로 옮길 때까지도 박 씨의 꿈은 장밋빛이었다. 자기보다 1살 많은 식당 주인 강모 씨와는 '언니 동생' 하며 친하게 지냈고, 식당 영업이 부진해 16개월간 못 받은 임금 2300만 원도 언젠가는 주겠거니 했다.

이때까지 불법체류자 신세였던 박 씨는 강 씨의 식당에서 계속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했다.

그런데 '언니'는 식당 운영비 등 갖가지 명목으로 돈을 빌려갔고 결국 박 씨가 십여 년간 애써 모아 둔 돈 6000만 원은 고스란히 강 씨 수중으로 들어갔다. 이후에도 강 씨는 이런저런 핑계로 박 씨에게서 돈을 빌려가는 일이 계속됐다.

2008년 10월 식당 문을 닫은 강 씨는 박 씨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 뒤 집안일과 아이들을 돌보게 했지만, 집안일을 하면서 빌려준 돈을 받아가라는 말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박 씨는 결국 2010년 8월 강 씨 집을 나왔고 지난해 2월 소송을 제기, 같은 해 8월17일까지 1.2.3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강 씨가 갖고 있던 재산을 자식들 이름으로 모두 돌려놓은 사실을 알고 또 한 번 절망해야 했다.

한 달 뒤인 지난해 9월, 박 씨는 정부가 내놓은 일종의 불법체류자 구제책인 중국동포 귀국지원 프로그램에 따라 일단 돌아갔지만, 그의 불행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한국 살이 10여 년간 변변한 검진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그는 중국 병원에서 요추협착증 진단을 받고 치료를 위해 다시 한국을 찾았다.

박 씨는 "차라리 중국 병원 측의 권유대로 현지에서 수술을 받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혹시나 빚을 받아낼 길이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와 한국병원 의료기술이 좋다는 말에 다시 한국 땅을 밟은 것이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병원에서 촬영한 MRI 사진을 들고 허리 전문병원이라는 서울의 한 병원을 찾아갔다.

증상을 살펴본 병원 측은 수술 받으면 며칠 뒤 걸어 나갈 것이라며 수술을 권유했고 건강보험이 없었던 박 씨는 500만 원을 내기로 하고 병원에 온 지 이틀 뒤인 지난해 12월17일 수술했다.

그런데 결과는 하반신마비였다. 수술을 받으면 걸어서 나갈 수 있다던 병원 측은 수술 때문이 아니라 원래부터 척추에 이상이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며 책임을 회피했고, 석 달 뒤인 지난 3월에는 1480만 원의 치료비를 요구하며 퇴원을 종용했다.

박 씨는 결국 병원에 더 있으려면 700만 원을 내라는 말에 지급각서에 서명하고 말았다. 그는 '나중에 천천히 내면 된다'며 '나쁜 사람 아니니 믿고 서명하는 하라'는 병원 관계자의 말을 믿었다.

이후 쫓겨나다시피 퇴원한 박 씨는 지인의 도움으로 파주이주센터와 연결됐고, 센터를 통해 성가복지병원으로 올 수 있었지만 또 황당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입원했었던 병원이 각서를 근거로 박 씨에게 치료비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박 씨는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하반신이 마비된 환자를 쫓아낸 것도 모자라, 갖은 사탕발림으로 각서를 받아놓고 이를 빌미로 소송을 제기한다는 사실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이런 처지를 뒤늦게 안 박 씨의 며느리는 "남편은 IT쪽 직장을 그만뒀고, 나는 코트라를 그만두고 어머니 때문에 한국에 와 있다"며 병원 앞에서 시위도 해 보고 여기저기 호소도 해 봤지만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숨지었다.

<동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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