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해례본 숨겨놓은 골동商 “돌려줄 생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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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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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권 국가귀속 뒤 처음 입장 밝혀

훈민정음 해례본을 도난당한 조용훈 씨가 이를 국가에 기증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한 5일자 본보 기사.
훈민정음 해례본을 도난당한 조용훈 씨가 이를 국가에 기증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한 5일자 본보 기사.
경북 상주시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의 소유권이 7일 국가에 귀속됐지만 훔친 해례본의 은닉처에 대해 함구하고 있는 배모 씨(49)의 심경에는 변화가 없는 것으로 10일 확인됐다.

▶본보 5일자 A12면 “훈민정음 해례본 되찾기 바라며…”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올해 초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대구교도소에 수감된 배 씨는 이날 본보 기자와의 면회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은 훔친 것이 아니다. 돌려줄 생각이 없다”며 소유권 변동 이후 처음으로 입장을 밝혔다. 이로써 상주 훈민정음 해례본 찾기는 국가가 강제력을 동원해 수색하는 등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상주 훈민정음 해례본의 법적 소유권자인 조용훈 씨(67)가 7일 국가에 기증하면서 해례본 찾기는 전기를 맞는 듯했다. 문화재청은 기증식이 있던 날 배 씨가 마음을 돌릴 것이라는 기대를 내비쳤다. 조 씨가 배 씨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면서 서로 감정의 골이 깊은 상태여서 소유권이 국가에 귀속되면 배 씨가 은닉장소를 밝힐 수도 있다는 기대였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창제 의의를 밝힌 예의(例義)뿐 아니라 자모의 쓰임새를 설명한 해례(解例)가 함께 들어있는 판본을 말한다. 상주 훈민정음 해례본은 2008년 7월 지역 골동상인 배 씨가 국보지정 신청을 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국보 80호이자 세계기록유산인 간송미술관 소장 훈민정음 해례본보다 보존상태가 좋고 소리와 표기에 관한 당대 연구자의 주석이 달려 관심을 끌었다.

▼ “훈민정음 해례본 훔친 것 아니다”… 숨긴 장소는 함구 ▼

배 씨는 당시 자신의 집에서 해례본이 나왔다고 주장했다. 국보 지정 신청 소식을 접한 조 씨는 배 씨가 다른 책을 사면서 자신의 집에 있던 해례본을 가져갔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은 지난해 6월 “배 씨는 조 씨에게 해례본을 돌려주라”는 판결을 내렸다.

10일 6개월여 만에 만난 배 씨는 건강해 보였다. 지난해 10월 경북 상주경찰서 유치장에서 보였던 초췌한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당시 가슴까지 내려오던 긴 머리는 이발해 말끔했고, 목소리도 안정되고 차분했다.

배 씨는 문화재청에 대한 불신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처음부터 문화재청이 일을 제대로 처리했으면 일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해례본을 빼앗기 위해 나를 일부러 가뒀다”고 주장했다.

재판이 진행됨에 따라 배 씨가 마음을 바꿔 훈민정음 해례본의 은닉 장소를 밝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는 지난해 10월 면회에서 “내가 평생을 가지고 있을 수도 없고, 결국엔 국가에 돌아가지 않겠느냐. 다만 가는 방법이 문제”라고 말한 바 있다. 이날 배 씨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은닉장소나 보관상태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화재청은 해례본이 낱장으로 뜯긴 채 진공포장돼 모처에 숨겨져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위원이 2008년 문화재 감정을 위해 배 씨의 집을 찾았을 때 배 씨는 낱장으로 뜯긴 2장만 보여줬다. 강신태 문화재청 문화재사범단속반장은 7일 기증식에서 “배 씨가 서울에서 진공 포장을 해 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소유권이 국가에 귀속됨에 따라 새로운 단서가 나올 때마다 적극 수색할 방침이다.

한편 이날 오후 대구고등법원 11호 법정에서는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한 배 씨의 항소심 공판이 열렸다. 배 씨가 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훈민정음 해례본을 반환하지 않아 문화재청의 고발로 진행되고 있는 재판이다.

이날 재판은 증인들이 출석하지 않아 별다른 신문 없이 끝났다. 증인 출석 여부를 확인하면서 재판부는 훈민정음 해례본이 실물 없이 국가에 기증됐다는 언론 보도를 언급하고 배 씨에게 해례본이 은닉된 장소를 공개할 의사가 없는지를 물었다. 배 씨는 “뭐라고요?”라고만 되묻고 응답을 하지 않았다.

[채널A 영상] 훈민정음 해례본 ‘수상한’ 기증


대구=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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