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행중 머리 말고 면도하고 ‘막가파 운전’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9일 03시 00분


■ 사고 부르는 차량용 액세서리 사용 크게 늘어

“요새 누가 안전벨트를 매고 다닙니까? 이거 하나만 끼우면 다 해결돼요.”

7일 오후 자동차 관련 업체가 밀집한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자동차거리’. 한 자동차용품 매장 진열대에서 처음 보는 물건이 눈에 띄었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을 때 자동으로 울리는 경보음을 없애주는 ‘안전벨트 경보음 제거기’였다. 가격은 사용가능 차종의 수나 재질에 따라 6000원에서 2만 원 사이. 이 업체 주인은 “안전벨트 매는 걸 불편해하는 젊은 운전자뿐만 아니라 운전을 많이 하는 택시운전사, 대리운전기사에게는 최근 필수가 된 제품”이라고 말했다.

도로 위 ‘안전 불감증’이 심각한 수준이다. 국내 자동차정비소와 자동차용품업체, 온라인 오픈마켓에는 안전벨트 미착용 등 불법을 조장하거나 운전자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자동차용품이 상당수 팔리고 있다.

시중에 판매되는 자동차용품 가운데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품목들은 차량용 헤어스타일러(일명 고데)와 면도기, 뒷좌석을 ‘어린이 놀이방’으로 만드는 에어매트 등 다양했다. 자동차부품업계 관계자는 “차량용 고데나 면도기는 운전 중 사용하면 주의가 분산돼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시청이나 휴대전화 사용 못지않게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놀이방 에어매트는 어린 자녀를 둔 운전자에게 인기가 높지만 뒷좌석 안전벨트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해 사고가 나면 매우 위험하다.

운전석 머리받침대 뒤에 부착하는 옷걸이, 운전대를 한 손으로 돌릴 수 있게 해주는 ‘파워핸들’ 같은 부착물도 사고 시 승객의 상해 정도를 더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다른 이들을 위협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는 용품도 있다. 회사원 유모 씨(34·서울 강남구 논현동)는 최근 운전 중 황당한 일을 겪었다. 유 씨의 차 앞으로 다른 차가 끼어들려다 여의치 않자 경찰차에나 달려 있는 외부 스피커를 켜고 “옆으로 꺼지라”며 욕설을 퍼부은 것이다. 개인이 부착하면 불법인 이 스피커는 최근 일부 운전자 사이에서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장안동의 카오디오업체 사장 조모 씨는 “운전하다 다른 차 때문에 짜증이 날 때 스피커로 한마디 하려고 설치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며 “25만 원만 주면 3시간 안에 장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매장에서는 형사들이 출동할 때 사용하는 소형 경광등을 1만 원에 팔고 있었다. 건전지로 작동하며 아랫부분에 자석이 달려 있어 손쉽게 차 지붕에 얹을 수 있다. 매장 점원은 “급히 달려야 할 일이 있을 때 사용하면 좋다”고 말했다.

이 밖에 안전운전에 직접 관련은 없지만 트렁크나 운전석 옆에 붙이는 ‘호신용 목검·삼단봉 거치대’도 인기다. 원래 우산을 비치하는 거치대의 용도를 바꾼 것이다. 가격은 2만 원 안팎. 업체 관계자는 “운전 중 시비가 붙을 때 호신용으로 안성맞춤”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부착물들은 교묘히 법망을 비껴서고 있어 단속하기 어렵다. 경찰은 이달부터 대대적인 자동차 불법구조변경(개조) 단속에 나섰다. 대상은 밖에서 보는 것만으로 쉽게 잡아낼 수 있는 고휘도전구(HID)나 개조 배기구(머플러) 불법 장착, 외관 개조 등이다. 그러나 차 안에서 사용하는 용품들은 사실상 외관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데다 자동차관리법 등 관련 규정의 적용이 모호한 게 걸림돌이다. 서울시 도시교통본부 관계자는 “안전운전을 위협하더라도 판매 행위 자체를 단속할 근거가 사실상 마땅치 않다”고 털어놨다.

이진석 기자 gene@donga.com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자동차#안전벨트#교통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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