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신고해줘…” 마지막 애원마저 친구는 외면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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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시 ‘10대 살해 암매장’ 끔찍했던 현장

“제발 경찰에 신고해 줘….”

친구들에게 무자비하게 폭행당하던 백모 양(17)이 숨지기 전 한 친구에게 남긴 말이다. 그러나 친구는 애타는 절규를 외면했다. 다시 무차별 폭행이 이어졌고 백 양은 싸늘한 시신이 됐다.

○ 외면당한 마지막 절규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동아일보DB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동아일보DB
18일 경기 고양시 행신동 한 근린공원에서 암매장된 시신으로 발견된 백 양은 폭행을 당하는 중 친구들에게 수차례 “살려 달라”고 애원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19일 일산경찰서에 따르면 5일 오후 3시경 행신동 모 빌라 지하 1층 이모 양(17) 집에서 백 양은 친구 4명에게 집단으로 구타당하고 쓰러졌다. 그로부터 4시간 뒤 현장에 백 양과 평소 알고 지내던 A 양(17)이 찾아왔다.

백 양은 다른 친구들의 눈을 피해 간신히 “경찰에 신고 좀 해줘…”라고 A 양에게 말했다. 그러나 A 양은 시선을 외면했다. 백 양이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지만 A 양은 끝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들의 폭행이 다시 시작됐다. 몇 년간 함께 해온 친구들에게 백 양은 “제발 살려줘”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폭행은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A 양 등 다른 친구들까지 가세해 백 양을 때리기 시작했다. 임신부(3개월)와 아이를 출산한 지 3개월 된 친구도 있었다.

야구방망이와 빗자루까지 동원된 매질은 3, 4시간이나 더 이어졌다. 결국 다음 날 오전 2시경 정신을 잃고 쓰러진 백 양은 끝내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A 양은 경찰에서 “현장에 갔을 때 이미 백 양은 친구들로부터 많이 맞은 상태였다”며 “경찰에 신고해 달라고 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날 이 양 등 5명에 대해 폭행치사 및 시체유기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A 양은 단순 가담한 것으로 조사돼 불구속 입건됐다.

[채널A 영상]암매장 장소 답사, CCTV에 고스란히 찍혀

암매장 장소를 답사하는 모습이 근린공원 CCTV에 고스란히 찍혔다. 채널A ‘뉴스A’ 방송화면 캡쳐.
암매장 장소를 답사하는 모습이 근린공원 CCTV에 고스란히 찍혔다. 채널A ‘뉴스A’ 방송화면 캡쳐.
○ 미용사 꿈은 허공에 남기고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백 양은 이웃들 사이에서 예의바르고 착한 아이로 통했다. 직업군인인 아버지의 엄격한 가정교육 때문이었다. 또래 친구는 물론이고 어린아이들과도 사이가 좋아 친언니, 친누나처럼 다정하게 지냈다. 이웃집 아이의 머리를 직접 땋아 주기도 하고 시간이 날 때면 동네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놀았다.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스스럼없이 “저, 남자친구 만나러 가요”라고 얘기할 정도로 싹싹한 딸이었다. 백 양의 이웃 진모 씨(28·주부)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봤는데 늘 착하고 부모님 말씀도 잘 듣는 아이였다”며 “중학교 때는 수업이 끝나면 곧장 귀가해 집안일을 도와주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평범하기만 했던 백 양의 생활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정반대로 바뀌었다.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친구들을 이때 만난 것이다. 이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학교에서는 겉돌기 시작했고 귀가 시간은 갈수록 늦어졌다. 가끔은 부모 몰래 가출을 하기도 했다. 성적은 곤두박질쳤고 결국 2학년 1학기를 마친 뒤 자퇴했다.

학교를 그만뒀지만 백 양은 미용사라는 새로운 꿈을 가졌다. 실제 미용학원에도 등록하고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자격증 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믿었던 친구들의 손이 ‘미용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결국 이루지 못하게 했다. 백 양의 중학교 3학년 때 담임교사 이모 씨는 “눈물이 많고 친구들한테 늘 져주는 아이였다”며 “단짝 친구와 조용히 제 할 일을 하는 성격이었지, 소위 문제학생은 전혀 아니었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백 양은 이웃과 선생님의 따뜻한 기억, 그리고 자신이 가졌던 미용사의 꿈까지 모두 허공에 남겨둔 채 멀리 떠나고 말았다.

고양=조영달 기자 dalsarang@donga.com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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