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120t’ 무거운 檢-警갈등… 檢 “천공기 사고 혐의입증 위해 상황 재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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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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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강수사지휘 받은 警 “실험 어디서 어떻게…”

지난해 11월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신길시장 현대화정비사업 공사장의 천공기가 넘어진 모습. 1명이 숨지고 3명이 중상을 입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지난해 11월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신길시장 현대화정비사업 공사장의 천공기가 넘어진 모습. 1명이 숨지고 3명이 중상을 입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지난해 11월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공사장에서 천공기(穿孔機)가 넘어져 1명이 죽고 3명이 중상을 당한 사고를 수사 중인 경찰이 천공기 운전자 등에 대해 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이 ‘과학적 실험에 따른 근거를 제시하라’며 보강수사를 지휘했다.

경찰은 검찰의 수사 지휘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지금까지 검찰이 관행적으로 해 온 수사 지휘의 범주를 벗어난다는 것이다. 해당 검찰청과 경찰서는 지난해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첨예한 갈등을 빚은 바 있어 이런 갈등이 배경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6일 신길동 천공기 전도(顚倒) 사고를 수사 중인 서울 영등포경찰서와 이를 지휘하는 서울남부지검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달 천공기 운전자 박모 씨(51)를 비롯해 건설사 현장소장 송모 씨(43)와 김모 씨(41) 등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지반이 약한 공사 현장에서 120t에 이르는 기계를 옮겨 세우기 위해서는 미리 지반 다지기 공사를 해야 하는데도 이를 소홀히 해 인명피해로 이어졌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검찰은 천공기가 넘어지는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실험 결과가 없다며 보강수사를 지휘했다. 지반 다지기 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천공기 전도의 원인이 됐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당시 상황을 재연해 실험을 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혐의 입증을 위해서는 인과관계를 철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경찰은 “실험에는 전문적인 물리역학 지식이 필요한 것은 물론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든다”며 “120t이나 되는 거대한 기계가 넘어지는 상황을 실험하라는 것은 과도한 요구”라고 하소연했다. 경찰은 지난달 수사지휘를 받은 이후 마땅한 실험 의뢰 기관도 찾지 못 한 상태다.

일부 경찰 관계자는 검찰 측이 이런 상황을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천공기의 전도 실험을 하라는 것은 겉으로는 수사 내용에 대한 문제 제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검찰의 ‘경찰 길들이기’로 보고 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의 수사과장은 지난해 11월 검찰의 수사 지휘 내용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논란을 일으켰고, 서울남부지검 부장검사는 수사권 조정안에 반발하며 사의를 밝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검찰과 경찰 관계자는 “수사상 혐의 입증을 위한 과정에서 생긴 일일뿐”이라며 “수사권 조정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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