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추락한 70대 노인 베트남인 선원이 뛰어들어 구해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25일 03시 00분


23일 오후 4시 50분경 전남 신안군 흑산면 예리 부두 앞. 주민 A 씨(76)가 수심 4m 깊이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A 씨는 술을 마시고 귀가하다 발을 헛디뎌 3m 아래 바다로 추락했다. 그는 익사 직전 상황이었다. A 씨의 부인(72)은 부두 위에서 ‘사람 살려’라고 비명을 지르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당시 흑산도 바다의 수온은 6도였지만 강풍이 불어 체감온도는 0도 이하였다.

그 순간 한 청년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 청년은 팔로 A 씨의 목을 감쌌다. 하지만 얼음장 같은 바닷물 속에서 A 씨를 5분 정도 잡아주던 청년도 몸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주민들은 “오메, 사람 구하려다 다 죽것네에(죽겠네)”라며 안타까워했다.

위기의 순간 전남 목포소방서 119흑산구급대 조영배 소방교(45) 등 구조요원들이 도착해 청년에게 밧줄을 던졌다. 그 청년은 A 씨의 몸에 밧줄을 묶어 구조에 성공했다. 구급대는 저체온증이 심각해 의식을 잃었던 A 씨를 곧바로 보건소로 옮겼다. 조 소방교는 “청년이 뛰어들지 않았다면 A 씨는 익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목숨을 걸고 구조에 나선 청년은 베트남 하이퐁에서 한국에 돈 벌러 온 잔티담 씨(31·사진). 그는 지난해 7월부터 흑산도 홍어잡이 배인 대광호(18t) 선원으로 일하고 있다. 현지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여동생이 시집온 한국에 왔다. 현지에 부인(30)과 아들(5)이 있는 가장이다. 그는 한국에서 돈을 모은 뒤 고향으로 돌아가 사업을 할 꿈을 갖고 있다.

담 씨는 서툰 한국말로 “군에서 인명구조법을 배웠다”며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빙그레 웃었다.

채기술 대광호 기관장(59)은 “담 씨는 매우 성실한 사람”이라며 “담 씨가 돈을 많이 모아 고향에 돌아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응급치료 후 귀가한 A 씨는 “바다에 빠져 정신을 잃고 ‘이제 죽는구나’ 했을 때 누군가 몸을 붙잡아 준 것이 기억난다”며 “담 씨에게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다”며 고마워했다.

신안=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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