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동생… 천국선 맛있는 빵 구워줄게”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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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에 장애인 형제 투신… 수첩엔 “제빵 배우고 싶어”

1일 오후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 단지 화단에서 서로 꼭 껴안은 상태로 40대 정신지체 장애인 형제가 숨진 채 발견됐다. 아파트 13층에서 투신한 이들은 땅바닥에 몸이 닿을 때까지 서로를 안고 놓지 않았다.

2일 송파경찰서에 따르면 1일 오후 7시경 서울 송파구 오금동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이 아파트에 사는 정신지체 3급 장애인 S 씨(45·일용직 근로자)와 정신지체 1급 장애인 동생(44)이 함께 숨져 있는 것을 주민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S 씨의 아파트에는 “장애인인 동생을 보살피는 게 너무 힘들어 살고 싶지 않다”는 내용의 S 씨가 쓴 유서 1장이 놓여 있었다.

아파트 주민 등에 따르면 3남 2녀 중 한 살 터울의 정신지체 장애 S 씨 형제는 함께 생활하며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어 왔다. 독립이 어려운 정신지체 장애 1급 동생은 6개월 전 아파트로 이사 와 형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했지만 정신지체 3급 장애인 형도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기초생활수급자인 형은 이웃에게 “금전적으로 힘들다”고 자주 말했다. 아파트 경비원 A 씨는 “가족으로 보이는 50대 여성만 가끔 집에 방문했다. 이 형제는 이웃과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며 “일자리가 없다 보니 형이 동생까지 부양하기 힘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아파트 주민 B 씨는 “말끔하게 잘생긴 S 씨가 자주 동생을 부축하고 다녔다”며 “동생을 돕는 형도 장애가 있는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S 씨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수첩에는 제빵학원 위치 및 전화번호와 함께 ‘제과제빵 일을 배워서 제과점에서 일하고 싶다’고 적혀 있었다. 또 인권단체와 종교단체, 관내 복지단체 등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장소와 연락처 등을 적어 놓았다. 형제는 인근 정신센터에서 상담을 받으면서 도움을 얻기도 했다. 시신이 안치된 병원을 찾은 S 씨의 친척은 “고인이 자신의 속사정을 남이 알길 원치 않는다”며 말을 아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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