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제물포 → 서울 충정로, 평소 2배 걸린 3시간 출근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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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방송을 믿는 게 아니었는데….” 지하철 1호선 고장 사고로 출근대란이 빚어진 2일 직장인 이창수 씨(49)는 “기관사의 안내에 따르다 1시간 반이나 지각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평소보다 갑절이 더 걸린 그의 ‘3시간 출근길’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이 씨는 이날 오전 7시 20분 인천 제물포역에서 전철을 타고 출근길에 올랐다. 업무를 오전 9시부터 시작하고, 직장이 있는 서울 충정로까지 1시간 반쯤 걸리는 만큼 지각 걱정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순조롭게 가던 열차는 부천역을 지나며 갑자기 속도를 줄였다. “앞 차와의 차량 간격 조정 때문에 서행하고 있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진 이 씨는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검색했다. ‘서울지하철 1호선 서울역에서 전동차가 고장으로 멈춰 섰다’는 기사가 있었다. 그는 ‘곧 고쳐지겠지’ 하고 생각했다. 이후 열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개봉역에 닿았다. 이번에는 “구로역 전철선 고장 관계로 서행 중이니 양해 바란다”는 방송이 나왔다. 이 씨는 “큰 고장이면 버스로 갈아타려 했는데 상황 설명이 전혀 없었다”고 했다. 기관사는 “1분 뒤 출발합니다”, “3분 뒤 출발합니다”라는 방송만 되풀이했다.

열차 안에서 발만 동동 구르는 사이 출근 시간인 오전 9시가 지났다. 열차는 30분 만에 두 정거장을 지나 오전 9시 16분 구로역에 도착했다. 역사가 지상에 있어 출입문이 열리자 영하 17도의 칼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열차는 문이 열린 상태로 20여 분간 멈춰 있었다. 정차하는 동안엔 출입문을 열어놓는 게 규정이다. 승객들은 추위에 몸을 떨면서도 “고장 수리가 끝나는 대로 출발하겠다”는 안내방송만 믿고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얼마 뒤 “수리가 길어지니 바쁘시면 다른 교통편을 이용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일부 승객이 투덜거리며 나갔다. 5분쯤 뒤엔 “이 열차는 운행하지 않으니 모두 내려달라”는 방송이 나왔다. 승객들은 “에이, 진작 얘기했어야지” “승객을 바보로 만드냐”며 거칠게 항의했다. 시간은 이미 오전 10시를 향하고 있었다.

한꺼번에 승객들이 쏟아져 나온 구로역 앞은 택시를 잡으려는 인파로 아수라장이었다. 이 씨는 신도림역까지 10여 분을 걸어가 2호선 열차로 갈아탔다. 회사에 도착한 시간은 출발 3시간 만인 오전 10시 반. 이 씨는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때 승객들이 기관사 말만 믿고 열차 안에서 기다리다 화를 당한 사건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고현국 기자 m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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