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군기지 예산 삭감 이후 다시 갈라진 강정마을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9일 03시 00분


“이겼다” 들뜬 반대단체… “중단되나” 맥빠진 주민들

6일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건설현장에서 한 인부가 크레인으로 방파제 공사에 쓰이는 테트라포드를 옮기고 있다. 서귀포=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6일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건설현장에서 한 인부가 크레인으로 방파제 공사에 쓰이는 테트라포드를 옮기고 있다. 서귀포=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마치 전쟁에서 이긴 것처럼 승리에 들뜬 분위기야.”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의 한 원로는 지난해 말 국회에서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제주해군기지) 예산 삭감이 단행된 후 이 같은 현지 분위기를 착잡한 목소리로 전했다. 이 원로는 “해군기지 사업은 이미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됐는데 정치권이 국가안보나 지역발전에 관심이나 있기는 한 것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6일 오후 찾은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와 관련해 경찰과 반대 단체 측의 최대 접전지 가운데 하나인 ‘중덕삼거리’에서는 반대 단체 측이 올레길 탐방객 등을 상대로 홍보전을 펼쳤다. 5, 6명이 모여 담소를 나누면서 간간이 웃음도 터뜨렸다. 승리 뒤에 오는 여유를 즐기는 듯했다.

국회는 올해 제주해군기지 항만과 육상공사에 필요한 예산 1327억 원 중 49억 원만 남기고 1278억 원을 삭감했다. 이 때문에 올해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집중하려던 해군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지난해 공사 중단 등으로 쓰지 못하고 넘어온 이월사업비 1084억 원으로 올해 공사를 진행할 계획이지만 맥은 상당히 빠졌다.

강정마을은 예산 삭감으로 공사가 중단될 것을 우려하는 주민이 있는가 하면 반대 단체 측은 국회가 제주해군기지 사업에 대한 부당성을 인정한 것이라며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 마을회관 ‘점령’하고 여전히 반대운동


이날 버스정류소 근처에 들어선 벼룩시장에서는 10여 명이 바다에서 잡아온 물고기를 손질하느라 바빴다. 하지만 해산물을 흥정하는 주민의 표정은 미소가 사라진 채 딱딱하게 굳었다. 거리에는 온통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현수막과 깃발이 나부껴 긴장감이 감돌았다.

강정마을회관에서는 10여 명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어디론가 전화를 하며 촛불집회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일부 마을 주민도 있지만 외부에서 들어온 단체 회원들이 사무실을 ‘점령’한 모습으로 비쳤다.

고권일 강정마을 해군기지반대위원장은 해군이 발행한 해군기지 기본계획조사보고서 사본을 들어 보이며 “해군이 제시한 시뮬레이션 자료를 분석한 결과 민군복합으로 쓰기에 부적절하고 심지어 항공모함 접안 내용이 있다”며 “해군은 애초부터 관광미항에 필요한 크루즈접안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오로지 군함만 염두에 뒀다”고 주장했다.
▼ 남은 작년예산으로 공사는 하고 있지만… ▼

해군기지 공사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던 마을주민들은 혼란스러워했다. 한 주민(48)은 “예산도 삭감되고, 야당이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얻으면 해군기지 자체가 물 건너가는 것이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강희상 강정해군기지추진위원회 사무국장은 “해군기지 찬성 주민들이 여러 차례 찾아와 공사중단을 우려했다”며 “이월 예산이 있기 때문에 올해 공사는 문제없다는 설명을 듣고서야 발걸음을 돌렸다”고 말했다.

○ 예산 삭감에 공사중단 위기 커져


이날 해군기지 공사현장은 수십 대의 레미콘 차량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방파제 공사에 쓰이는 테트라포드(Tetrapod·일명 삼발이)를 비롯해 4종의 콘크리트 블록이 공사현장을 가득 메웠다. 본격적인 방파제 공사가 진행되면 수중에 들어갈 항만구조물이다.

해상에서는 공사로 생기는 오염물이 바다로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한 오탁방지막 시설의 보수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동쪽 해안에는 굵은 자갈을 쏟아 부어 저류지를 만드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올해 서쪽 해안에는 케이슨 제작장이 만들어진다. 이 케이슨은 개당 무게가 3000∼4000t 규모로 방파제를 이루는 핵심 구조물이다.

류즙필 제주해군기지사업단 부단장(대령)은 “반대단체 측과 약간의 충돌은 있지만 기지 공사는 현재 차질 없이 이뤄지고 있다”며 “예산 삭감으로 완공시기가 1년 뒤인 2015년 말로 늦춰진 아쉬움은 있지만 공사를 원만히 수행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해군 측은 올해 전체 공사진척도를 34%까지 끌어올릴 예정이지만 변수가 많다. 케이슨 제작장 마련을 위해 발파작업이 이뤄지면 반대단체 측이 반발할 게 분명하다. 더욱이 총선과 대선에서 이슈로 재등장하면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공사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해군 측의 계획과 달리 올해도 상당 부분 공사에 진통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서귀포=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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