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주 왜 안 마셔, 네가 예쁜 줄 아나”… 소방서가 끔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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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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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피해보다 더 힘든 것은 직장 내 ‘왕따’였습니다. 다시 직장을 구할 엄두가 나지 않네요.”

지난해 말 소방직 공무원(9급)을 그만둔 A 씨(30·여)는 1년여 동안의 직장생활이 몸서리쳐지도록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어렵게 합격한 공무원 직장이었지만 이제는 아무런 미련도 없다. 인명을 구조하는 업무를 천직으로 알고 일했던 A 씨의 소박한 꿈이 무너진 것은 지난해 1월 말. 전남도소방본부 영광소방서 홍농119안전센터에서 구급대원으로 일한 지 2개월이 조금 지난 때였다. A 씨는 센터장의 권유로 소방서장과의 술자리에 참석했다. 소방서장이 권하는 폭탄주를 사양하자 서장은 노골적으로 성희롱 발언을 했다.

“니(네)가 못 마시면 어쩔 건데. 내 말 안 들으면 (다른 근무지로) 보내 버린다. 니가 이쁜(예쁜) 줄 아나. 가슴도 없는 게…”라는 말을 듣고 감당하기 힘든 수치심이 들었지만 꾹 참았다. 첫 술자리 이후 서장은 휴대전화로 술자리에 나올 것을 강요했다. 전화를 받지 않기도 했지만 서장은 계속 전화를 해댔다. 술자리를 거부하자 ‘명령 불복종’이라며 “사표를 가지고 오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함께 근무하던 센터장은 “부하직원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어떡하느냐. 우리가 네 집으로 쳐들어갈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일로 소방서장은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해임됐고 술자리를 강요했던 센터장은 견책 처분을 받았다.

A 씨는 결국 2개월 뒤 다른 지역으로 발령을 받았다. 보복성 인사라는 것을 느꼈지만 서장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게 된 게 다행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정신적 고통은 이곳에서도 이어졌다. 전임 근무지에서 있었던 일로 몇몇 동료가 집단따돌림을 한 것이다. ‘상사한테 대들다 전근 왔다. 술을 사달라고 했다’는 수군거림도 들렸다.

8월부터 두 달간 광주에서 정기교육을 받고 돌아오자 주위 시선은 더 차가웠다. “돈을 타내기 위해 언론에 제보했다”는 악의적인 소문까지 나왔다. 그 바람에 여럿이 모이는 장소에는 가지 못하는 등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 2개월간 병가를 내고 광주여성의전화와 정신과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다. 결국 ‘직장 복귀가 어렵다’는 전문의 진단이 내려졌고 A 씨는 소중했던 소방관의 꿈을 접어야 했다. 이틀 전부터는 커피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A 씨는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어렵게 공부해서 공무원이 됐지만 개인의 고통쯤은 아랑곳하지 않는 소방조직에 대한 마음의 상처가 너무 크다”고 했다. 한편 소방본부 측은 5일 “왕따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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