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기력만 있으면 한 달 반 만에 고수익 역술인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2일 20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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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기력만 있으면 한 달 반 만에 점집 창업이 가능합니다."

지난해 12월 28일 오후 서울 종로의 A역술학원 조모 원장은 "100만 원을 내고 32번 만 수업을 받으면 고수익 평생직업인 역술인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A학원은 점집 창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사주 궁합 작명 명리학 성명학 등을 교육한다. 학원의 기본 과정은 3개월이지만 주말까지 수업을 들으면 한 달 반 만에 역술인이 될 수 있다. 3회 차 수업이 진행 중인 교실에는 개량 한복을 입은 강사가 칠판에 십이지간(十二支干)을 한자로 쓴 뒤 외울 내용을 설명했다. 수업은 대부분 단순암기식으로 이뤄졌다.

임진년(壬辰年) 새해를 맞아 점집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늘면서 점집 창업을 문의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경기가 불황이면 점집 문턱이 닳는다'는 속설처럼 취업난 속에 역술인을 꿈꾸는 사람들이 역술학원으로 몰리는 것이다. 학원들도 '100% 창업' 내걸고 자체 자격증을 발급하며 수강생을 모으고 있다. 경기 의정부시 B역술학원은 4개월 창업 속성반과 2개월 상담 실전반을 운영 중이다. B역술학원 관계자는 "1, 2월에 점집 창업이 가장 많이 이뤄지는 시기다"며 "20~30대 젊은 여성들의 사주카페 창업 문의가 가장 많고 은퇴를 앞둔 40~50대 직장인과 부업으로 삼으려는 주부의 문의도 많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기자가 창업 희망자를 가장해 학원을 방문해보니 대부분 학원들은 "창업이 손쉽다"고 강조했다. A학원은 "삼재(三災) 등 몇 가지 용어만 외우고 사람의 표정을 살피며 눈치껏 섞어서 말하면 된다"며 "어려운 한자가 적힌 사주 책만 펴놓고 설명하면 다들 쉽게 믿는다"고 기자를 안심시켰다. 다른 학원은 문의하러온 사람들의 사주를 직접 봐주며 '신기(神氣)'와 '예지력'이 있다며 강하게 권하기도 했다. 일부 학원은 젊은 층에서 인기를 끄는 서양의 타로 점 강의도 제공한다.

학원 측의 설명과 달리 실제 현장의 분위기는 다르다. 1년 전 사주카페를 연 한 20대 여성은 "1년간 학원에 다녔지만 창업 후에도 6개월 이상 개인 교습을 받아야 했다"며 "점집은 주변 입소문이 중요한데 한 번 '별로'라고 소문나면 가게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토로했다. 단기 속성학원에서 배우고 가게를 열었다가 실패해 다른 학원에서 추가로 강의를 듣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9년 기준 점술 및 유사서비스업종에 해당되는 업체는 1만4000여 개로 종사자는 1만5000여 명 이상이다. 한국역술인협회는 전국의 역술가나 무속인이 최소 50만 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역술인협회 관계자는 "역술인은 미래에 대한 조언보다 카운슬링의 역할도 중요한데 돈벌이에 눈 먼 사람들이 이런 역할을 하기 어렵다"며 "협회 차원에서 엉터리 학원들을 단속하고 싶어도 '떳다방' 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자체 단속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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